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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Nov 29. 2024

겨울에는 마법의 수프

급격히 추워진 날씨에 침대에서 빠져나오기가 힘이 든다. '나는 과연 침대를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머리에 맴돈다. 추워진 날씨에 뇌도 얼어붙은 기분이다. 그래도 몸을 일으켜 나가 본다. 요즘의 나를 침대 밖으로 꺼내주는 것은 딱 하나 '따뜻한 마법의 수프' 덕분이다.



내 맘대로 재료를 넣어 끓여놓은 마법의 수프를 따뜻하게 데워 한 입 먹는 먹는 순간, '역시 겨울도 괜찮아 이렇게 따뜻한 수프도 먹을 수 있고'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마법의 수프는 따끈따끈할 때 아니 뜨끈뜨끈하게 해장국 느낌으로 먹어야 제 맛이기 때문에 늦가을부터 겨울인 지금 계절에 정말 잘 어울린다.








수년 전 그러니까 코로나 이전에 삿포로에 가려고 예약을 했었다. 그러다 커다란 지진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무서운 마음에 예약을 취소했다. 그때는 아이가 많이 어릴 때라 큰 변수가 생긴다면 대처할 자신이 없었던 때이기도 했다. 아쉬운 마음이 컸다.



한 겨울의 흰 눈이 가득 쌓인 삿포로에서 따뜻한 카레수프를 먹는 로망을 꿈꿨다. 그런데 그 로망이 저 멀리 날아갔다. 그리고 연이어 코로나가 터지면서 여행을 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더니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다시 여행을 갈 수 있는 때가 왔다. 가장 먼저 가고 싶었던 곳은 단연코 삿포로였다. 그러나 가고 싶은 계절이 바뀌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혹독한 겨울을 자꾸 보냈더니, 눈이 가득 내리는 지역은 별로 가고 싶지 않아 졌기 때문이다. 대신 여름의 삿포로는 시원하다고 하니 차라리 그때 가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 추석 우리가 가을이라고 여기는 그때, 아직도 한국은 여름이던 그때, 우리는 삿포로에 다녀왔다. 정말로 여전히 한여름이었던 한국과 다르게 삿포로 지역은 시원했다. 긴팔과 긴바지를 챙겨가길 잘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첫날 저녁 유명한 커리 수프집을 방문했다. 그토록 원하던 로망의 커리스프를 주문했다. 구워진 닭다리와 많은 야채들 그리고 커리 맛과 향신료 맛이 많이 나는 스프.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그래도 맛은 완전히 이질적이진 않았다. 우리가 알듯 말듯한 그런 맛이 나는 수프였다. 와보고 싶은 여행지에서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던 커리스프. 그 날의 기억은 강렬했다.




그 후로 삿포로의 여행이 떠오를때면 커리 수프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그곳에서 파는  커리스프 패키지라도 하나 사 올걸, 와서 만들어 먹어라도 볼 수 있게 소스라도 사 와볼걸 하며 후회했다.



야채 커리수프







평소에 마녀 프라고 불리는 야채수프를 잘 만들어 먹는다. 감자, 양배추, 당근, 양파, 토마토 그리고 취향에 따라 닭고기나 소고기를 넣고 아니면 고기는 넣지 않고 볶은 후 푹 토마토소스를 넣고 끓여서 만들어 먹는 요리이다. 의외로 아이도 꽤 좋아하는 맛이다. 아이는 야채를 좋아하지 않는데 마녀 수프의 야채는 곧잘 먹는다. 그런 이유에서 찬바람이 부는 지금 시즌에는 집에 마녀 수프가 자주 끓여져 있다. 게다가 마녀 수프를 한 솥을 끓여놓으면 몇 번 정도를 먹을 수 있어서 편한 점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와 나는 마녀 수프를 '마법의 수프'라고 부른다. "마법의" "수프" 다시 한번 "마법의" "수프" 요즘 아이에게 마법의 수프를 주면 마치 정말 마녀처럼 그릇에 숟가락을 넣고 젓는 흉내를 내며 "마법의"라고 외친다 그러면 그걸 내가 받아서 "수프"라고 대답해줘야 한다. 마법의 수프를 줄 때마다 아이는 외치고 나는 늘 대답한다.




그렇게 최근에 마녀수프를 정말 자주 만들어 먹었다. 그랬더니... 조금 질려버렸다. 그랬던 어느 날 마녀 수프에 시판 매운 토마토소스를 넣고 끓여 먹어봤다. 그랬더니 매콤한 마법의 수프가 속을 확 뚫어주며 또 새로운 맛이 펼쳐졌다. 정말로 마법의 수프가 된 느낌이 들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맛있고 감칠맛 나는 마법의 수프를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원래 기존에 만들어 놓은 마녀수프에 카레 가루를 듬뿍 넣었다. 그리고 후추도 뿌렸다. 왠지 그것으로 모자랄 것 같아서 청양고추를 하나 썰어놓고, 고춧가루도 뿌렸다. 고춧가루대신 크러쉬드 레드페퍼라던지 파프리카 시즈닝이었으면 더 풍미가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법의 가루를 뿌렸다. 원래는 스테이크 구울 때 쓰는 시즈닝 페퍼인데 뭔가 다양한 향신료가 든 느낌이라 마지막 포인트 역할을 해줄 것 같았다.



그리고 약한 불에 보글보글 끓였다. 그리고 한 입 맛을 보았다. '어? 설마 이 맛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삿포로에서 먹었던 커리 수프와 비슷했다. 지금 먹은 지 세 달이 넘어가고 있어서 맛을 조금 어버렸을 수도 있지만 비슷한 느낌이 맞았다. 게다가 청양고추와 고춧가루를 넣었더니 한국인 취향에 맞을 법한 커리 수프가 탄생한 것이다.



뭔가 한국과 일본과 인도의 조합이 마법의 수프에 남아있었다. 기존 아이와 먹었던 것을 마법의 수프라고 불렀으니 이번에 만든 것은 '매콤 버전의 마법의 수프'이다.



매콤 버전의 마법의 수프



근데 먹으면 먹을수록 정말 맛있다. 삿포로에서는 치즈가 한 장 올라간 라이스랑 먹었는데 집에 마침 호밀빵이 남아있어서 같이 먹어보았다. 오! 이 맛이야!!!!!!!



다음번엔 '매콤 버전 마법의 수프'에 치즈를 뿌려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식욕이 돋을 때면 역시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탄생한 나만의 마법의 수프는 내게는 완벽한 겨울 음식이다.



나중에 아이가 매운 것을 먹게 된다면 마법의 수프 매콤버전을 먹여보고 싶다. 그리고 또 오랫동안 마법의 수프를 엄마의 맛으로 기억해 주길 기대해 봐야겠다.






이번 마법의 수프는 겨울 음식의 혁신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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