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여행이 가져다주는 행복에 관하여….
나는 기차로 여행하는 것을 사랑한다. 그러나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하더라도 기차 타는 일이 몇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했다. 그래서인지 몇 년만에 타는 기차여행은 나에게 특별한 추억들이다.
기차와 나의 인연은 유년시절 시작되었다. 6살 때 우리 가족이 여름 휴가로 밀양에 가기 위해 처음으로 서울행 무궁화호 6호차에 올랐다. 그 시절에도 고속철이 있었지만, 그 때의 나에게는 무궁화호도 빨랐다.
그래서 단지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그 시절부터 순수하고 천진했던 그 시절의 어린 나에게 기차는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한 존재가 되어갔다. 무궁화호는 부산 시내를 120km의 속도로 빠르게 떠나 푸르른 들녘이 펼쳐진 낙동강이 보이는 구포역에 도착했다.
구포역 저편에는 서울에서 먼 길을 달려온, 지금은 사라진 새마을호가 우리가 방금 떠나온 부산을 향해 떠나기 위해 잠시 쉬고 있었다.
3분여의 시간이 흘렀다. 무궁화호는 또다시 구포역을 출발해 화명역, 물금역에 차례대로 섰고, 초록빛 원동 들판을 지나 삼랑진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삼랑진 까지 가는데 약 45분이 걸렸다. 지금 45분은 고속철로 부산에서 동대구까지 갈 수 있는 시간이다.
또다시 우리의 무궁화호는 삼랑진을 출발해 이름 모를 간이역들을 차례대로 지난 뒤 우리의 목적지인 밀양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무궁화호는 저 푸른 들판을 향해 달려갔다. 저 들판의 끝에는 웅장한 마천루가 있으리라….
밀양에서 7시간을 논 다음 우리는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궁화호를 탔다. 무궁화호에서 바라보는 저녁놀이 주는 인상은 아름답다 못해 황홀했다.
무궁화호는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존재다. 특히 시골 기차 느낌이 나는, 7300호데 디젤기관차가 이끄는 무궁화호가 좋다. 우렁찬 엔진음을 세차게 내뿜으며 황금 들녘 벌판을 내달리는 무궁화호를 보자니, 가슴이 아린 시절의 추억과 아련해지는 어린 시절이 생각나 웅장해진다.
하지만 이 아련했던 추억을 싣고 달렸던 무궁화호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코레일은 정말 비정한 회사(정확히 말하자면 공기업이다) 이다. 어찌하여 기차의 수명이 다했다 하여 가차없이 버리는가! 나의 낭만과 추억이 깃든 소중한 기차를!
2024년 기준 현재 무궁화호의 수명은 3년 남짓이다. 무궁화호만이 나의 온전한 어린시절의 여행길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랬던 무궁화호가 이제 더 이상은 볼 수가 없다니! 결코 고속철은 그런 추억과 낭만을 줄 수 없다. 오직 무궁화호만이 나에게 추억을 선물해 줄 수 있다.
최근 ‘ITX-마음’이라는 신상 기차가 무궁화호를 대체한답시고 나왔다. 그 기차가 공식적으로 무궁화호를 대체한다 해도 내 마음 속의 무궁화호는 결코 그럴 수 없다. 무궁화호만이 주는 특별한 승차감과 독특한 기차 안의 냄새, 그리고 달리는 동안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추억은 새 기차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무궁화호만의 전유물이다.
한번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무궁화호를 타고 아버지랑 간 적이 있었다. 5시간 30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앉아 있어서 온몸 구석구석이 쑤셔왔지만, 차창에 앉아 석양이 지는 대전역 인근 머나먼 전라도의 황금 들녘을 생각하며 아름답고 예쁜 추억을 만들었다. 무궁화호에서만 들어볼 수 있는 각지 사람들의 수다떠는 소리와 함께. 늘 그랬듯 무궁화호는 서민들의 발이 되어준 기차다.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이의 마음속에도 타지로 가야 할 때 무궁화호를 탔을 것이고, 저마다의 사연이 다양하게 얽혀 있는 서민들만의 애환이 깃든 기차다.
부모님이 어렸던 시절에는 분명 그랬으리라. 매미가 지저귀는 푸른 여름날의 시골역에 통일호가 들어서고 22살 정도의 청춘 밴드가 기차에 올라타 통기타 선율에 노래 부르면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과 박수를 보내면 기차 안의 분위기는 뜨거워 졌으리라.
그립고 아련하다 못해 추억의 습작에 겨워 아득한 그 옛날을 추억한다면 마치 그 시절이 돌아올 것만 같다. 어찌하여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는가! 이 야속한 시간은 6살 적에 쌩쌩 달리던 무궁화호를 이빨빠진 호랑이로 만드는가!
부디 정들고 낡은 기차가 오래 살아남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