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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옥 May 19. 2024

어머니 의자를 주문한다

어머니가 천천히 걷는다. 성능이 떨어진 건전지처럼 걷다가 선다. 힘이 모이면 속도를 조절하며 가만가만 걷는다. 가는 귀가 먹은 돌래 영감처럼 허우적거리지는 않는다.


중늙은이 딸은 상늙은이 어머니와 나란히 걷지 않는다. 앞서 걷다가 돌아오고 뒤로 걷다가 기다린다. 오늘은 천변, 어제는  솔숲, 내일은 보경사 경내를 함께 걷는다. 반찬 메뉴 바꾸듯 해상공원, 메타쉐콰이어 숲길과 고운사도 걷는다.


어머니가 걸음을 멈추는 횟수가 잦아지고 쉬는 시간이 길어진다. 걷는 시간이 조금씩 짧아진다. 아직은 30분이라도 걸으려는 의지가 있다. 누워서 쉴 의자가 필요한가? 휴대용 접는 의자를 주문한다.


토요일 11시, 아름다운 청하중학교에 간다. 교내 산책로가 어머니 걷기에 편하다. "좋다." 처음 오는 학교 앞에서 어머니 표정이 펴진다. 정문 앞길에 키가 엄청 큰 가로수들이 멋있단다. 오랜만에 표정이 밝아진다.


"저 새 좀 보래." 가는 귀도 멀고 눈도 침침한 어머니가 으로 가리킨다. 벼슬이 몸통만 한 새가 콩콩거린다. 후투티? 후투티가 두 마리이다. 예쁘다. 후투티를 이리저리 찍고 오니 어머니는 나무 의자에 누워 있다. 후투티가 날아간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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