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만이 희망이 아니네
<나무를 심은 사람 The man who planted trees>
장 지오노 짓고 김경온 옮기고 최수연 그린. 2020, 두레, 60쪽
1953년에 발행된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이제야 만난다. 4천 개 낱말로 쓰인 60쪽 단편소설이다. 1987년에 프레데릭 백이 30분짜리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뒤 매스컴을 탔다. 1992년에 '녹색평론 3,4월호'에 소개되고 1993년에 채혜원이 처음 번역 출판했다. 원작 삽화는 조엘 졸리베가 그렸는데 볼 수 없어 안타깝다. 애니메이션은 1994년에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비디오 판권을 사서 판매했다. 초등학교에 교재로 보급되었다는데 당시 재직 중이던 나는 왜 몰랐나!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가 도토리를 고르는 장면이 감동적이다. 작거나 금이 간 도토리를 버리고 완벽한 도토리만을 골라낸다. 황무지에 3년 동안 튼실한 도토리 10만 개를 심으면 2만 그루의 싹이 나온다. 2만 그루 중 절반 가량은 들쥐나 산토끼들이 갉아먹거나 죽어도 떡갈나무 1만 그루는 살아남는다는 계산이다. 30년 후면 떡갈나무 10만 그루가 숲을 이룰 터인데 1만 그루는 바다의 물 한 방울 같을 것이라고. 틈틈이 너도밤나무 묘목도 기르고 자작나무가 자랄 수 있는 골짜기도 물색한다.
5년 뒤에 황무지를 다시 찾아가니 '엘제아르 부피에'는 양 대신 벌을 100여 통 치고 있었다. 떡갈나무는 양치기보다 키가 더 크고 너도밤나무들이 끝없이 펼쳐지고 자작나무도 숲을 이루었다. 말라 붙은 개울에 물이 흐르고 산토끼, 멧돼지를 잡으러 사냥꾼들이 올라왔지만 그들은 숲을 양치기 노인이 이루어내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천연의 숲을 시찰하러 온 정부 관리들도 20여 년만에 황무지가 혼자 숲으로 변한 사실을 처음 본다고 말한다. 처자식을 잃고 황무지로 온 양치기가 40여 년간 나무를 심어온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한 사람의 힘으로 황무지를 가나안으로 바꾸었다.
물이 마른 황무지를 떠났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마을이 되살아나니 살기 좋은 동네라고 희망을 가지고 이주해 왔다. 배운 것 없는 늙은 농부가 끈질긴 노력과 열정으로 숲을 이루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공간을 이루었다. 황무지에 혼자 도토리나무를 심은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 "그는 행동이 이기주의에서 벗어나고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고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으면서 세상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인격이다."
1979년 인도 아삼주 마줄리 섬에 홍수가 나서 뱀들이 떼죽음 당했다. 충격을 받은 16세 소년 '자다브 파잉'이 홀로 대나무를 심어 숲을 이루었다. 51세가 된 자다브 파잉의 별명을 붙여 '몰라이 숲'이라 부른다. 자다브 파잉은 지금도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모른다. 1997년 인도네시아 자바 달리마을이 산불로 잿더미가 되었다. 45세 '사디만'이 혼자 나무 1만 1천 그루를 심었다. 250만 제곱미터에 반얀나무, 피쿠스 나무를 심기 시작하여 24년 만에 냇물이 흐르는 푸른 산으로 바꾸었다. "사람들이 풍족하게 살아가기에 계속 나무를 심겠다. 숲을 태우지 말아 달라."는 사디만도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은 모른다. 현대판 寓公移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