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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 심는 사람들

by 송명옥

어디서 왔능교? / -포항예. / 아~.

-할머니, 이 꽃나무 이름 뭡니꺼?/ 그렁거 모린다.


-뭐 심습니꺼? / 퐅.

-퐅? / 팥. 옥수수 수확한 자리에 팥 심지.
-팥 모종 처음 봅니다. 언제 수확해요?

동지 팥죽 쑤기 전에, 10월 말.
-팥 팝니까?
야아. 아까 사진 찍던 집에 오소.
-네. 무궁화 옆에 분홍꽃 핀 나무는 이름 뭐라예?
백일홍.
-아. 나무백일홍. 배롱나무가 분홍색이네요. 얼굴 안 보이게 사진 찍어도 돼요?
찍어소.
-고맙습니다. 시월 말에 올게요.


장맛비가 그친 아침에 고은사에 간다. 내연산 자드락길 2km를 왕복한다. 음양탕 한 잔 마시고 빈 배로 나선다. 오르막길을 쉽게 걸으려는 셈이다. 이른 아침 그 자드락길은 냄새가 다르다. 풋풋한 듯 비린 듯 익숙하지 않지만 나쁘지 않다. 팥 모종하던 부부는 보이지 않고 잔잔한 나무들이 다닥다닥 붙어 산다. 가지 많은 나무들은 흥부네 같다. 이른 8시라서 고은사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에 탱자나무를 본다. 과수원도 보경사도 탱자나무 울타리이다. 고목에는 굵은 가시가 삐죽하고, 어린 나무에는 여린 가시가 뾰족하다. 새파란 탱자가 열린 나무도 있고 말똥말똥한 나무도 있다. 나무마다 상태가 다른 것은 사람과 같네. 가시 품은 탱자야, 향기로운 울타리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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