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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옥 Mar 01. 2024

"내가 다 봤어"

겨울비가 내린다. 지난 가을에는 몹시 가물더니 겨울 끝에 비가 잦다. 이 동네는 눈이 더 귀하다. 올해 2월에 한번 살짝 내렸다. 강원도와 울진에 눈이 쌓여도 영덕 동해안은 쨍쨍하다. 백두대간 줄기가 비껴간 때문인가?


비 그친 한낮에 곡강천따라 걷는다. 천변에는 청매화 홍매화가 엉켜 피고 비닐하우스에는 딸기가 달콤하다. 곡강천 물 소리를 들으며 북천수를 거쳐  흥해서부초등학교까지 걸을 셈이다. 얼굴을 가린 자전거족도 띄엄띄엄 지나간다. 길은 아름답다.


북천수를 지나니 인적이 드물다. 낫질하는 할머니에게 말 걸어 본다.

"뭐 하세요?"

허리 굽은 할머니가 돼지감자 줄기를 벤다. 혈압이 높아 차로 마시려고 관리하는데 외지인이 캐어 간단다. 일명 뚱딴지는 지금 잎도 꽃도 떨어져 무엇인지 분간되지 않는다. 앙상한 줄기를 보고도 돼지감자인 줄 귀신같이 알고 덜 자란 뿌리까지 캐어 간단다. 지키고 있을 수 없어 싹둑 벤다고.


속상해하는 할머니에게 맞장구친다. 감자알을 따고 줄기를 엉성하게 심고 간 교활한 인간! 승용차를 몰고 와서 캐어 가는 비양심가! 길가의 돼지감자를 탐하는 욕심꾸러기 과객! CCTV가 없는 구간이라 증거도 없다. 할머니와 헤어져 고개를 드니 앙상한 나뭇가지에  한 마리 앉아 있다. "내가 다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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