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우지에서 마주한 느림과 예의의 시간
두 번째 숙소는 신기하게도 TV가 없었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TV를 틀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러지 못해 조금은 아쉬웠다. 그래도 대신 일본어로 된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게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이 낡은 목조건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다다미방과 책장이다. 신기하게도 바깥에 있다가 방에 들어오면, 바닥에서 쿰쿰한 다다미 냄새가 올라온다. 이상하게 그 냄새가 좋다. 공용공간 책장을 열면 낡은 일본어 서적에서 곰팡이 냄새가 스며 나오는데, 그것마저도 좋다. 가장 최근에 비슷한 냄새를 맡았던 건 아마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였던 것 같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도 사내 도서관이 있어 종종 책을 빌리지만, 이런 냄새는 나지 않는다. 아마 너무 ‘깨끗하게’ 관리하기 때문이겠지. 나는 오히려 책의 나무냄새, 그리고 여러 사람의 손때와 시간이 켜켜이 쌓인 냄새가 더 좋다.
오늘의 일정을 시작하기 전, 숙소 공용정원 한켠에 앉아 따뜻한 일본 녹차 티백을 우려 마셨다.
아침과 저녁은 제법 선선해진 날씨라, 따스한 녹차가 몸을 타고 들어올 때 바라본 맑은 하늘과 작은 정원이 참 좋았다. 첫 번째 숙소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성이었다.
그렇게 여유로운 아침을 지나, 나는 오늘도 내 눈이 되어줄 카메라와, 마지막 임무를 수행할 간사이 와이드패스를 챙겨 숙소를 나섰다. 이제는 새로운 숙소에서 203번 버스를 타고 JR엔마치역으로 이동한 뒤 교통패스로 쉽게 환승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늘의 메인 일정은 우지에서의 다도 체험. 다만 예약 시간이 12시 45분이라 오전이 애매하게 붕 떠 있었다. 그래서 중간에 후시미 이나리역에 내려 신사를 둘러본 뒤 우지로 향하고, 오후에는 나라공원까지 들를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오늘은 평일임에도 관광객이 유난히 많았다. 나중에 일본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중국에서도 황금연휴라 많은 관광객이 일본을 찾았다고 한다. 교토역에서 나라행 열차를 탔는데, 객실 안이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결국 후시미 이나리는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건 탁월한 결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나리역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내리자 열차는 한결 여유로워졌다.
교토에서 약 30분쯤 달려 도착한 우지역. 다도체험까지 한 시간 반 정도가 남아 있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우지다리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코끝을 스치는 달콤쌉싸름한 호지차 냄새가 정신을 홀렸다. 아침도 거른 터라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호지차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물었다. 쌉싸름한 맛이 입안 가득 번졌다. 어릴 적엔 ‘이 쓴 걸 누가 먹을까’ 했는데, 이제는 그 맛이 참 좋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걸 좋아하게 된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호지차는 녹차를 불에 볶아 만든 차로, 고소한 향이 일품이다. 이 가공 방식이 바로 교토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지의 중심, 우지다리(宇治橋) 는 교토의 카모가와를 닮아 있었다. 조금 덥긴 했지만, 다리를 스치는 맑은 물빛이 눈부셨다. 혼자 온 사람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누군가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 오늘의 우지를 즐기고 있었다. 나도 혼자 온 여행자로서, 이 순간의 공기를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셔터를 눌렀다.
걸으며 느낀 건, 교토의 카모가와나 우지카와 모두 한국의 한강이나 탄천처럼 정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강변엔 돗자리를 펼 자리도, 달리기 트랙도 없다. 그런데도 좋다. 오히려 강 양옆의 낮은 목조 주택들이 만들어내는 정경이 평온하다. 사람들은 강을 자유롭게 오가며, 물과 집과 사람의 조화로운 풍경을 즐긴다.
아침에 203번 버스를 타고 출발했던 엔마치역 앞의 규동집이 생각났다. 어제 두 끼나 먹었던 곳이다.
오늘 아침에도 들어갔다가 그냥 나왔다. “오늘은 패스트푸드 규동은 그만.”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우지에 도착했지만 아직 식사는 하지 못한 상태였다.
다도체험까지 시간이 남아 근처를 둘러보다가, 우지카와 신사로 가는 길에 예쁜 외관의 카레집을 발견했다. 바깥 메뉴판을 꼼꼼히 보고 들어가 앉았다. 두 남자 사장님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였고, 영어로 친절히 주문을 도와주었다. 카레 한 그릇을 시켜 허겁지겁 먹었다.
일본 카레는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시던 3분 카레와 비슷하다. 알고 보니 그 ‘3분 카레’도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어쩐지 익숙한 맛이었다. 카레는 언제나 맛이 없다기보다는 ‘맛이 없을 수 없는 음식’ 같다. 깨끗이 비운 그릇을 들고 “고치소사마데시타(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하자, 사장님이 환한 얼굴로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 답했다. 따뜻한 교감이었다.
식사 후 들른 우지카와 신사는 블로그에서 본 것처럼 ‘꼭 가봐야 할 명소’라기보단 조용한 분위기의 신사였다. 안내판에는 유네스코 지정 유산이자 헤이안 시대부터 이어진 역사 깊은 곳이라 적혀 있었다. 신사를 천천히 돌아본 뒤, 예약해둔 우지 타이호안 티하우스로 향했다.
체험장에서는 기모노를 입은 중년 여성 선생님이 시범을 보이고, 옆의 젊은 남성 스태프가 영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통역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다도는 말보다 동작이 더 많은 언어를 품고 있었기에 괜찮았다.
예전에 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 마다가 참 좋은날)을 통해 다도를 처음 접했다.
스무 살의 여성이 인생의 방황 속에서 다도를 배우며 25년간 삶의 중심을 잡아가는 이야기였다. 그 영화처럼, 나도 이번 여행에서는 ‘한 번쯤 다도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다도는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차완(茶碗)에 따뜻한 물을 부어 예열하고, 대나무 거품기인 차센(茶筅)으로 섞는다.
그다음 차킨(茶巾)이라 불리는 천으로 닦은 뒤, 말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거품을 내며 마신다.
마지막으로 잔을 헹구고 정리하면 모든 절차가 끝난다.
비록 영화에서 처럼 무릎을 꿇고 장시간에 걸쳐 다도를 행하지는 않았지만, 약식으로나마 차에 대한 예의와 집중의 시간을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체험을 마치고 우지역으로 돌아가던 길, 익숙한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3년 전, 이 길을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들렀던 아이스크림 가게의 할머니는 여전히 건강해 보였다. 물론 나를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나는 그분을 기억했다. 멀리서 조용히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우지역에서 나라역까지는 약 30분. 종점이라 열차가 멈추자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역 앞에는 나라공원까지 가는 셔틀버스가 새로 생겼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셔틀’이라면 무료일 줄 알았는데, 이곳은 오히려 교토 버스보다 비싼 250엔을 받았다. 불과 1.4km 거리인데 말이다. “내 두 다리는 아직 튼튼하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3년 전에도 잠시 들렀던 나라공원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하지만 이번엔 관광객이 훨씬 많았다. 일본어보다 중국어가 더 많이 들릴 정도였다.
공원에 들어서자 문득 첫째 딸이 떠올랐다. 예전에 “나라공원에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아직 함께 오지 못했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는 이유로 아빠 혼자 일본에 와 있는 게 미안했다. 다음번엔 꼭 가족들과 함께 와야겠다,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사람들은 평화로웠고, 사슴들도 여전히 사람들의 손에서 먹이를 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나는 벤치에 앉아 사람들과 사슴들 사이에서 여유를 만끽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슴들 사이에도 질서와 서열이 있었다. 힘의 논리로 영역을 주장하고, 뿔을 맞대며 싸우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인간 사회와 다르지 않았다. 한정된 자원을 나누기 위해 경쟁하고, 그 안에서도 각자의 선을 지키며 살아가는 존재들. 겉으론 평화로워 보여도 그 안에는 치열한 조화의 질서가 있었다. 그러한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교토행 열차에 몸을 맡겼다.
일본 여행 첫날부터 벌써 닷새째가 되었다.
사실 직접 날을 세어보진 않았지만, 그동안 나의 든든한 발이 되어준 교통패스가 오늘로 효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간사이 공항에서 처음 이 패스를 손에 쥐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땐 그저 ‘교통비를 아낄 수 있는 티켓’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 작은 종이 한 장이 내 여정을 이끌어준 나침반이자 동반자였다. 매일의 길을 잇고, 낯선 도시를 익숙하게 만들어주던 그 패스를 이제는 지갑 한켠에 조심스레 넣었다.
언젠가 다시 교토를 떠올릴 때, 그 낡은 패스가 이 며칠의 햇살과 바람, 그리고 마음의 온도를 고스란히 되살려줄 것이다.
いま、この瞬間を味わう。“지금, 이 순간을 음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