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가게 삼촌, 에크멕 암자

이스탄불 빵가게의 모든 빵이 다 내 거..?

by 가니Gani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니

나를 마중 나온 굴샤의 모습이 보였다.

굴샤와의 만남은 요란법석 떠는 일 없이 잔잔했다.

우린 그저 조용히 웃으며 포옹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초등학생 때 펜팔 친구가 되어

학생시절을 지나 직장인이 된 우리는

비록 10년을 넘게 알고 지낸 동안

단 한 번밖에 만난 적 없이 없지만,

특유의 편안한 웃음을 짓고있는 굴샤를 보니

오랜만에 고향친구를 만난듯한 느낌이 들었다.


굴샤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집은 이스탄불 중심지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그 곳은 지하철 역과는 거리가 조금 있지만,

빵집은 코 앞 거리에 있는 빵세권이다.

코 앞 거리는 과장이 아니라

정말 집 바로 옆 옆 건물에 빵집이 있다.

게다가 그 빵집의 사장님은 굴샤의 외삼촌이다.


집 근처에 차를 세우자마자

빵 가게에서 누군가 우당탕탕 달려 나온다.

빵집 삼촌이었다.


작은 키에 푸근한 체형,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가진 삼촌을 나는

에크멕 암자 (Ekmek amca)라고 부른다.

한국어로는 빵 삼촌이라는 뜻이다.

삼촌은 내 손을 잡고 흔들며 환하게 웃으셨다.

"정말 잘 왔다! 몇 년이 흘렀는데 얼굴이 그대로네!

나이를 하나도 안 먹은 것 같아!"


호탕한 삼촌을 보니 튀르키예에 온 게 실감이 났다.

저번에 봤을 때도 나를 엄청나게 반겨줬던 삼촌은,

이번에도 나를 조카처럼 친근하게 대해주셨다.


삼촌을 보자마자 "에크멕 암자!"라고 외치니

굴샤와 삼촌이 동시에 깔깔 웃는다.

튀르키예 사람들에겐 이 별명이 제법 엉뚱하고

귀엽게 들린단다.


삼촌은 나를 가게로 데려가셨다.

직원들이 제법 있는 큰 규모의 빵집에는

아침에 갓 구운 빵과 쿠키들, 케이크들이

먹음직스레 전시되어 있었다.


어수선한 소리에 일 하던 직원들이 모두 나왔다.

빵을 사러 온 손님들도 흥미롭게 나를 지켜본다.

몇몇 손님은 나에게 다가와 튀르키예어로 말을 걸고,

삼촌은 튀르키예어로 나를 소개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언어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굴샤가 바빠졌다.


영어 선생님답게 유창한 영어실력을 가진 굴샤는

심지어 한국어도 조금 할 수 있어서

그들이 하는 사소한 말 한마디까지

나에게 전달해 줬다.


손님들의 말을 번역하랴 삼촌말을 번역하랴

정신이 없던 굴샤가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삼촌이 여기 있는 빵 아무거나 다 골라가래!"


나는 호의를 덥석 받는 넉살 좋은 스타일이 아니다.

좋으면서 괜히 쭈뼛거리고 있으니

삼촌은 내가 혹시나 거절할까 싶어

나 대신 빵을 턱턱 골라주신다.

”이거 맛있으니까 들고 가고, 저것도 좀 담아야겠다...”


어릴 적 내가 좋아하던 티브이 시리즈인 말괄량이 삐삐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엄청난 부자이자 해적의 딸인 삐삐가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금화 한 닢을 들고 사탕가게에 가서

거기서 온갖 종류의 사탕과 젤리, 초콜릿을

산처럼 쌓아두고 원 없이 먹는 장면이다.


어릴 때 그 에피소드 속 주인공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언니와 상상을 해보곤 했었는데,

그게 현실로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내 두 팔에는 점점 빵들이 쌓여갔다.

커다란 아몬드 쿠키, 머랭쿠키, 에클레어,

바클라바, 조각 케이크, 튀르키예식 빵 등등..

다 먹을 수도 없을 만큼의 빵을 한가득 주고 나서야

삼촌은 만족하셨다.


공짜로 많은 빵을 받아 괜히 머쓱해하는 나를 보며

굴샤는 그럴 필요 없다는 듯 말했다.

“앞으로 익숙해져야 해,

삼촌이 너 볼 때마다 빵 주시려고 할걸? “


튀르키예 사람들에겐 한국인과 비슷한 정이 있다.

그들은 사람을 사랑하고 아까워하는 일 없이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베푼다.


평화롭던 오후의 빵가게는

어떤 동양인의 방문이라는 이벤트로 떠들썩해졌다.

빵을 한 아름 안고 그 중심에 선 나는

기분 좋은 어수선함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캐리어는 내가 들게! 엄청 가벼워 보이네”

에크맥 암자는 거대한 30kg 캐리어를 한 손으로 번쩍 들더니 집으로 앞장서셨다.

뒤따라가던 나와 굴샤는 삼촌이 잠시 휘청이는 걸 보고

둘이서 키득거리며 몰래 웃었다.


빵집 근처에 있는 굴샤네 집은

복도부터 계단까지 빵 향기로 가득했다.

행복을 찾아 떠난 이스탄불에서의 여정은

포근한 빵향기와,

두 팔 가득 넘칠것같은 사랑으로 시작되었다.


에크멕 암자의 빵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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