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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아 Jan 04. 2024

나는 요양병원 사회복지사입니다.

돈이 없어

돈이 없어. 아들이 다 빼갔어.

이따금 한 번씩 병원 로비에 큰소리가 들려온다. 신관에 입원해 있는 그분이다. 목소리가 엄청 크다. 무슨 말을 해도 "돈이 없어"만 반복하신다. 매달 이런 상황이 반복되어 국장님의 안내로 사건을 해결했었다. 그러던 어는 날 국장님께서 안 계신 상황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김없이 "돈이 없어"하며 통장을 내보인다.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며 통장을 받아 들었고, 통장을 살피는 듯한 척하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나왔던 지시는 명확했다. "아들한테 전화해 줘" 아들. 보호자. 연락 이 세 가지가 고민의 중심에 놓였다. 사회복지사로서 환자의 안위뿐만 아니라 보호자의 안위도 고려해야 했다. 다만, 어떤 결정을 내려도 리스크를 동반한 상황이었다. 결국 수화기를 들었다. 어떤 목소리가 나올지, 어떤 대화가 펼쳐질지 알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짧은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자 "돈이 없어"한마디만 하고서는 수화기를 내게로 주신다. 차분한 목소리로 보호자가 말씀하신다. "아버지가 돈이 엄청 많은 줄 알고 계시는데, 기초수급자로 들어오는 돈이 전부이니 이런 일로 전화는 안 주셨으면 합니다. " 보호자의 심기가 불편해 보이지 않은 것에 얻은 안도가도 잠시, 환자에게 어떤 말을 전달하지 환자가 원하는 도움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그 정적인 순간에 간병팀장님께서 지나가시면서 급하게 말씀하셨다. "그분 통장에 돈이 없어서 내려오셨을 거야. 23일에 돈이 입금 되는 날이야." 이에 나는 빨리 탁상 달력을 찾아 오늘자인 20일과 23일을 차례로 가리켰다. 그러자 환자분은 "23일에 돈이 들어온다고?" 하며 이해한 듯이 말하였다. 단지 날짜를 가리키는 것만으로 쉽게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

그리고 23일이 되자 다시 병원비를  결제하려고 환자분이 내려오셨다. 금액을 설명하려고 폼을 잡자 환자분이 말씀하신다. "난 안 들려. 글로 써줘." 금액을 정확히 적어 주자 "알았어" 라며 담백하게 답변하신다. 짧은 대화 속에 나는 알 수 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환자분의 뛰어난 인지력과 적극성은 나에게 사회복지사로서의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와 소통하는 능력은 얼마나 소중한지, 환자의 의사전달 방식에 맞춰 적절한 자원을 제공하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P.S : 긴 입원생활을 해보지 않은 나는 장기투병을 했다는 말씀을 들을 때면 "고생하셨어요"라고 답변하면서 속으로는 '병원비가 꽤 많이 나왔겠네'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요양병원 근무하면서 한 달 단위로 병원비 결제를 진행하고, 급성기 병원에서도 중간 정산 제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종합병원에서 의료지원팀이  있고 그분들이 환자분들의 병원비 정산에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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