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틈, 나를 채우는 기록
글을 쓰지 못한 시간
한 달 넘게 포트랩에 글을 올리지 못했다.
엄마가 편찮으셨다.
병원을 오가고, 엄마 곁을 지키고, 괜찮아질 거라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들.
그 일이 해결되기까지 다른 일들을 할 수 없었다.
글을 쓰지 못했다.
책을 읽지 못했다.
필사를 하지 못했다.
기록하지 못했다.
내가 했던 말들
"하루 5분만 시간을 내봐요."
"바빠도 10분은 낼 수 있잖아요."
"짧은 시간이라도 기록하면 달라져요."
항해자들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나 자신에게도 수없이 했던 다짐들.
아무리 바빠도 틈을 내서 기록하자고,
사유랩을 만들자고.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5분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10분을 낼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마음이 편해야 글도 쓰고,
필사도 하고, 기록도 할 수 있구나.
이 깨달음이 왔을 때,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엄마 걱정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는 펜을 들 수가 없었다.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노트를 펼칠 수가 없었다.
물리적인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5분만 내면 된다"는 말.
이 말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였는지 깨달았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그런 기록은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기록은 여유의 산물
사유랩에 들어가려면
먼저 마음의 짐을 내려놔야 한다는 걸 배웠다.
기록은 시간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가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항해를 할 수 있으려면
바다가 어느 정도 잔잔해야 하듯이,
글을 쓰려면 마음이 어느 정도 평온해야 했다.
포트랩에서 말하는 '사유랩'은
의도적으로 만드는 작은 틈이지만,
그 틈을 만들 수 있는 여유 자체가 선물이었다.
글을 못 쓴 나를 자책할 필요가 없었다.
그 시간은 글 대신 엄마를 돌보는 시간이었고,
기록 대신 걱정하는 시간이었고,
사유 대신 기도하는 시간이었다.
그것도 삶의 일부였다.
다시, 기록을 시작하며
그 사이 엄마는 수술을 하셨고, 이제는 많이 좋아지셨다.
앞으로도 조금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만함에 감사하다.
이제야 나는 다시 노트를 펼칠 수 있었다.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알았다.
"5분만 내면 된다"는 말 뒤에는
"마음이 편할 때"라는 전제가 숨어 있다는 것을.
기록은 시간의 산물이 아니라 여유의 산물이라는 것을.
항해하는 삶 속에는 때로
닻을 내릴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에는 사유랩이 아니라,
그저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가니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유난히 길었던 비가
엄마를 더디게 회복되게 하는건 아닌지
날씨 마저도 무심하게 느껴지던 시간이 지나니
파란하늘
저 멀리 보이는 산
모든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무채색의 삶이 하나씩 색이 입혀지고
알록 달록 채색되기 시작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 상황과 마음을 글로 기록했다면
조금은 편안했을까? 반문해본다.
대답은 마음이 복잡할 땐 더하지 말고 빼자.
포트랩은 기록할 수 없었던 그대의 시간도 이해합니다.
마음이 무거울 때는 잠시 멈춰도 괜찮습니다.
다시 항해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생겼을 때,
우리는 여기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