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을 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무조건적인 안정.
어떠한 외부 활동도 허락되지 않았다.
바뀌는 약 처방에 따른 신체와 감정 변화의 모니터링,
그것이 이 휴식의 초점이었다.
나는 뇌의 경보장치가 고장 난 사람이다.
스트레스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뇌는 경보를 울려 신체를 비상 체제로 몰아넣는다.
그건 회사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집에서도, 외부 자극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상황에서도
그 비상 시스템은 작동했다.
그리고 나는, 일상의 기본조차 유지하기 힘든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말했다.
“예측 가능한 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불확실한 하루는 그 자체로 리스크라고 했다.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병세가 악화될 수 있으니까.
그 조언에 따라 나는 정말 단조로운 삶을 살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뉴스로 하루를 시작하고,
밥을 먹고, 운동하고, 다시 쉬고.
그렇게 나의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들만 바라보며 하루를 보냈다.
회사에서 정신없이 살다가,
모든 경로가 갑자기 차단된 생활을 하려니
이 휴식은 결코 달콤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역이었다.
거의 무한정 주어진 시간.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전문가들의 조언을 있는 그대로 따라 하는 것뿐이었다.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스트레스에 굴복한 게 아니라,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는 걸.
아이처럼 마음과 사고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
무너진 성벽을 치우고
그 자리에서부터 다시 기초 공사를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사람들의 걱정을 사는 존재가 되었다.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곁에서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
그게 그 시기의 나였다.
사실...
그 시기의 기억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