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번째 불행의 시기

by 따뜻한 말 한마디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해를, 나는 잊을 수 없다.
처음으로 진짜 불행이라는 것을 느낀 해였다.


입학 직전, 우리 집에 검사와 사무관들이 들이닥쳤다.
아버지가 또 사고를 친 것이다.
자세한 내막은 몰랐지만, 검사가 올 정도라면 범죄가 개입된 일일 것이다.


나는 방 안에서 고등학교 교과서를 펴고 예습을 하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검사는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열심히 공부해라.”

그 말 뒤에 숨은 감정을
나는 그때는 몰랐다.

그날 이후 우리 집은 급격히 무너졌다.

부모님은 점점 집에 오지 않게 되었고,
대신 채무 독촉 전화만이 유일하게 울려댔다.

그 전화를 대신 받는 건 내 몫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화 요금조차 못 내 집 전화는 끊겼다.

나는 점점 집에 들어가기 싫은 아이가 되었다.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고 집에 가는 그 길이
지옥으로 걸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아버지가 집에 있는 날엔
공기조차 오염된 것처럼 무거웠다.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날.
하복 수선을 맡긴 바지를 찾고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문 앞에서 멈췄다.
안에서는 부모님의 격한 싸움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울부짖었고,
아버지는 핑계를 댔다.

나는 문 앞에 서서 바지봉투를 들고
몇십 분을 서 있었다.
아무도 내가 거기 있는 걸 몰랐다.

내 나이 열일곱.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가을이 깊어질 무렵,
어느 일요일 아침.
어머니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내 옷과 어머니 짐 몇 가지를 보따리에 담고
큰 이모 집으로 향했다.


그날 이후,
나는 대학에 가기 전까지
남의 집 식구로 살아야 했다.


지금도 고맙다.
큰 이모는 본인의 막내 동생과 조카를 선뜻 받아주었다.
외할머니까지 함께 사는 집에
기꺼이 방 하나를 내어준 것이다.


우리는 원래 옷방으로 쓰던 작은 방에 살았다.
작은 침대엔 내가,
바닥엔 어머니가 잤다.


짐을 풀고 나니
발 디딜 틈조차 없던 그 방에서
우리는 첫날밤을 보냈다.


그날 밤,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나는 아직도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며칠 동안 멍하니 있던 어머니는
곧 식당 일을 시작하셨다.
처음 간 식당은 오래 버티지 못하셨다.

낯선 환경과 힘든 육체노동 때문이었겠지.


나는 학원을 다 끊었고
성적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처음 겪는 현실 앞에서
내 마음은 방황하고 있었다.


급식비를 못 냈다.

그땐 학교에서 급식비를 안 낸 학생을
행정실에서 방송으로 불러냈다.
나는 그 명단에 포함되었다.


아버지가 어머니 명의로 받은 대출 때문에
어머니는 신용 불량자가 되었고,
급식비 자동이체조차 불가능했다.


매달 급식비 납부 시기가 되면
나는 행정실에 불려 가
직원에게 혼나야 했다.


어머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현금으로 직접 내는 게 나을 것 같다”라고 말하고,
힘들게 번 돈에서 급식비를 받아
학교에서 눈치를 보며 냈다.


그 무렵,
나는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열등감은 내 성격을 점점 예민하고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래도,
내신은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권 사립대 수시에 지원해 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고3, 1학기.
수시 지원 얘기를 꺼내자
어머니는 조용히 나를 방으로 불렀다.

“우리 집은 사립은 못 보내. 국립도 겨우 가능할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시야는 멍해졌고,
마음에 찬 물을 끼얹은 것 같았다.


가난은 알고 있었지만,
그토록 깊은 가난일 줄은 몰랐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진짜 ‘불행’을 느낀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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