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고장 난, 불안의 생활

by 따뜻한 말 한마디

뇌의 경보시스템이 고장 났다.
공황장애 판정을 받은 뒤, 나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이다.


너무 오래, 너무 자주, 극도의 스트레스에 노출된 탓일까.
나의 뇌는 이제 상황에 맞지 않게, 무작정 경보를 울린다.

밥을 먹다가도,
회사에서 모니터를 보며 차분히 일하는 와중에도
그 경보는 갑작스럽게 작동해 나를 극한으로 몰고 간다.


경보가 울리는 날이면,
내 체력은 순식간에 바닥난다.


모든 자극은 증폭되어 들려오고,
빛은 눈을 찌를 듯 강하게 퍼지고,
소리는 필터 없이 내 고막을 울린다.


마치 내가 데어데블이라도 된 듯,
내 몸은 세상의 자극을 있는 그대로 흡수한다.
좋았던 하루의 시작도 그 순간 모든 에너지가 끊기며 무너지곤 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다.
그래서 더 힘들다.


이 증상은 사실 ‘공황’ 그 자체가 아니다.
공황이 올 것이라는 두려움이 먼저 몸을 감싸며 나타나는,
일종의 ‘예기 불안’이 만들어낸 결과다.

몸은 아직 공황이 오기 전인데,
이미 온몸이 방어태세로 돌입하며 비명을 지른다.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이런 일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다시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스스로를 탓한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나는 이렇게까지 약한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나는 또다시 깊은 감정의 늪에 빠진다.


가장 괴로웠던 경험은,
내가 사랑했던 사람 앞에서 증상이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


단둘이 떠난 여행.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중이었다.

숨이 막히고, 외부와의 연결이 끊긴 듯한 공황.

그날 이후,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고
결국 그 벽은 이별이 되었다.

나는 끝없는 자기혐오에 빠졌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나는 멀쩡해야 하고, 이 정도에 무너지지 않아야 해.”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러면서도 점점 더 무너져갔다.


회사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겉보기엔 멀쩡한 내가 반차를 내고, 휴가를 내고,
때때로 일을 멈춘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게 ‘꾀병’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일의 성과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조직의 문제아’라는 프레임이 나를 덮었다.
사람들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졌고,
나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갔다.


그리고 결국,
Acting Out.
수개월의 휴직.
조직에서 이탈한 사람.

나는 그렇게 ‘떠나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 후로 나는 지금도 불안과 스트레스를 관리하며 살아간다.
죽지는 않지만, 평생 함께 가야 하는 병처럼.


처음엔 저주했다.
이 고장 난 뇌, 이 불안한 몸, 이 변해버린 나 자신을.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모든 것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이젠 내가 나를 곁에 두고 바라보려 한다.

그게,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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