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완성시켜줄 오너먼트 뜨기
(작년에 작성한 글을 토대로 편집하여 발행합니다. 따라서 본문에 언급된 올해는 2021년을 의미합니다)
올해도 11월이 되자 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할 자리를 정돈하고 베란다 구석에서 끈에 칭칭 감겨 있던 트리를 꺼낸다. 3단 트리를 조립하며 균형에 맞추어 나뭇가지를 펴고 있자니 문득 내가 어른이 되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된 가정을 꾸렸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어린 시절에 나는 깨끗이 정돈된 거실 한 귀퉁이에 부모님이 준비해놓은 트리에 인형을 하나씩 매달며 설레는 기분을 만끽했을 뿐 그 뒤에 숨은 노고를 몰랐다.
어른이 된 지금 나의 역할은 아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일상에 어지럽혀진 거실을 정리하며 트리를 놓을 장소를 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거실에 가구를 재배치한 다음 트리를 설치하고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펴며 아이가 귀가할 때까지 모든 일을 마치기 위해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결혼한 첫해부터, 명절에는 전을 부치는 대신 팬케이크를 구워 먹자며 남편과 정한 우리 집의 새로운 전통처럼, 독립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매해 크리스마스트리를 직접 고르고 설치하고 정리하고 보관하고 다시 꺼내 가꾸는 일과 같다고 느껴진다.
매년 반복하다 보니 트리를 준비하는 나만의 요령도 생겼다. 3단으로 구성된 트리를 바닥에서부터 한 단씩 조립한 후 나뭇가지를 골고루 매만져서 빈 곳이 없이 채워지도록 한다. 이때 나뭇가지를 아래로 꺾어 내리거나 수평으로 눕히는 것보다는 만세 하는 양팔과 비슷하게 살짝 위로 세우는 것이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더 풍성해 보이고 오너먼트를 걸어도 안정적이다. 전체적인 형태를 잡고 나면 재빨리 주렁주렁 장식을 달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 욕구를 꾹꾹 누르고 우선 차분히 앉아 꼬여있는 전구 줄을 푸른다. 트리의 꼭대기에서부터 불빛이 골고루 채워지도록 전구를 감아 주는데 막상 하다 보면 전구가 생각보다 많이 소요된다. 인내심을 가지고 여기까지 했다면 이제 조금 쉬어도 되는 타이밍이다. 집에 혼자 있다면 가족들이 전부 모이는 저녁 시간을 기다리며 트리를 설치하느라 흩어진 먼지를 줍고 작년에 오너먼트를 차곡차곡 포장해서 보관해온 구두 상자를 트리 밑에 미리 꺼내 놓는다.
자, 이제부터는 아이를 불러서 본격적으로 다 같이 트리에 장식하는 시간이다. 구두 상자의 뚜껑을 살짝 열자 반짝이는 글리터가 공기 중에 흩어진다. 화려한 글리터가 칠해진 가벼운 재질의 오너먼트는 매년 한두 개씩 모으는 가장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장식품이지만 아이와 함께 트리를 꾸밀 때는 반짝이가 많이 떨어져 나도 모르게 제한을 두게 된다. 보기보다 무거워서 나뭇가지 끝에 걸 때 힘 조절이 필요한 원목 소재의 오너먼트나 떨어트리면 깨지는 유리 오너먼트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손이 두꺼운 아빠와 아직 주의력이 부족한 아이가 트리 가까이에 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을 치켜뜨고 감시하게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온 가족이 마음 놓고 즐겁게 만질 수 있는 뜨개 오너먼트가 제격이다. 뜨개로 작은 산타 양말을 만들기도 하고 눈사람이나 진저브래드맨 인형을 만들기도 하지만 내가 매년 빠트리지 않고 만드는 것은 솜을 채운 동그란 크리스마스 볼이다. 첫 시작은 기본 도안을 보고 만든 단색의 양모 공이었지만, 매해 연습을 거듭할수록 도안 보는 법이 익숙해져 어느새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흰색과 빨간색 실로 배색한 문양이 새겨진 볼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르네 앤 카를로스(노르웨이와 덴마크 출신의 니트 디자이너 듀오)의 도안을 참고하여 크리스마스 볼을 해마다 만들고 있다. 우선 양쪽 끝이 뾰족하고 연필 길이만큼 긴 장갑 바늘 4개에 각 3코씩 총 12 코를 만들어 준다. 네 개의 바늘을 원형이 꼬이지 않게 균형을 잡으며, 다섯 번째 바늘로 겉뜨기를 하다 보면 마치 내가 다섯 개의 바늘을 유능하게 통제하는 뜨개 장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처음에는 12 코로 시작한 작은 원이 총 48 코가 될 때까지 일정한 규칙을 따르며 코를 늘려간다. 도안을 보고 성실하게 한 단 두 단 뜨다 보면 어느새 크리스마스 볼의 절반이 완성되는데, 이제부터는 코 늘림을 했던 규칙을 반복하며 반대로 코를 줄여 주면 된다. 넓었던 원이 점점 작아지다가 마지막에는 6 코의 작은 점이 되어 닫히기 전에 양모 솜으로 속을 빵빵하게 채워준다. 아이들이 바닥에 데굴데굴 굴리고 노는 공과 달리 크리스마스 볼은 트리에 걸어야 하므로 적당히 푹신하고 가볍게 채워주는 것이 좋다. 볼이 너무 헐렁하지 않고 너무 딱딱하지도 않게, 딱 알맞은 만큼의 솜을 채워 놓으면 따듯한 아기 엉덩이를 만지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여러 번 반복해서 만들다 보니 이제는 나만의 크리스마스 볼 도안을 만들어 아이의 이름이나 그 해를 상징하는 문양을 창작하여 새길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4살이 된 이안이의 나이와 이름 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 문양을 새긴 볼을 만들었다. 배색 실은 보통 바탕색 한 개와 문양에 넣는 색 한 개를 선택하는데 꼭 백색과 빨간색이 아니어도 좋다. 나는 올해 유독 아이가 자주 입었던 민트색과 내가 좋아하는 버터 색을 골랐다. 모눈종이 종이에 크리스마스 볼의 몸통이 되는 부분인 가로 16칸 세로 13칸의 직사각형의 틀을 그리고 십자수 도안처럼 한 칸씩 색을 칠해가며 문양을 완성하면 얼추 도안이 완성된다. 4개의 뜨개 바늘에 12 코를 잡고 코 늘리기를 하며 48 코를 만든 다음 직접 만든 도안을 보며 몸통 부분에 배색 실을 이용해 문양을 새기며 뜨다가 다시 코 줄이기를 하며 동그란 볼을 만들면 완성이다.
한 해를 돌아보며 직접 구상한 도안으로 크리스마스 볼을 차곡차곡 만들다 보면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쯤엔 우리 가족의 역사와 추억이 깃든 뜨개 볼이 구두 상자 한가득 쌓여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에 중요한 가르침은 가슴에 새기라는 말이 있듯이, 12월에는 우리 모두 바늘과 실을 잡고 올해의 추억을 크리스마스 볼에 새겨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