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따듯하게 데워주는 티코지 만들기
결혼하고 처음 살림살이를 장만할 때 몇 가지 내가 집착했던 아이템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남편은 극구 반대했지만) 나의 취향으로 밀어붙인 욕실용 리넨 수건과 아무리 많이 사도 또 사고 싶어지는 부엌용 키친 크로스였다. 어릴 때부터 항상 '천떼기'를 좋아했던 나는 부들부들한 촉감이 좋은 내복으로 인형을 만들고 싶었는데, 멀쩡한 새 내복을 자르면 엄마한테 혼날까 봐 가위로 몰래 내복에 구멍을 내곤 했었다. 지금도 나도 여전히 원단을 좋아한다. 그걸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도 즐겁지만, 리넨 타올과 키친 크로스처럼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은 직물이 있다. 순정이 느껴지는 리넨 100%의 직물을 바라보면 어릴 적 부드러운 내복 천을 자르고 싶었던 마음속 욕망이 끓어오르는 느낌이다. 세탁을 거듭할수록 흡습성이 높아지고 점점 더 손에 착 감기는 부드러움을 주는 리넨 직물, 게다가 질긴 소재라 닿아 없어질 때까지 사용 가능한데 한 가지 유일한 흠이 있다면 고가의 가격이었다. 그래서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리넨 100% 실로 뜨는 나만의 키친 크로스를!
나는 부드러운 울사나 털 날림이 적은 코튼실을 즐겨 사용하지만 가끔은 용도에 따라 리넨실이나 마실을 사용하기도 한다. 마 100%의 실로 직사각형의 직물을 짜면 설거지할 때 헹굼 수세미로 사용하기 좋고, 리넨 100%의 실로 직사각형의 직물을 짜면 코스터나 냄비 받침 또는 주방에서 행주 대용으로 사용하기 좋다. 만드는 방법은 학창 시절 가사 시간에 배운 대바늘 목도리 짜기와 동일한데 실의 재질에 따라서 쓰임새가 다양하게 생기니 가끔은 색다른 실을 사용해 주방에서 뜨개 물을 사용하는 경험을 해보아도 좋겠다.
우선 대바늘 두 개를 가지고 첫 코를 잡을 때 원하는 직사각형 한 변의 길이만큼 코를 잡고 평면으로 가터뜨기를 한다. 겉뜨기로 한 단을 뜬 다음 직물을 뒤집어서 다시 겉뜨기로 돌아가는 것이 가터뜨기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원하는 길이가 나올 때까지 같은 과정을 반복하면 된다. 바늘과 실의 굵기에 따라 성긴 정도가 다르게 나오니 두꺼운 직물을 짜고 싶을 때는 굵은 실과 얇은 바늘로 촘촘히, 성기고 얇은 직물을 짜고 싶을 때는 굵은 바늘로 숭덩숭덩 뜨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직물은 물에 여러 번 세탁할수록 더 흡습성이 좋아지니 주방에서의 사용도 편리해진다. 이렇게 인내심을 가지고 무한 겉뜨기를 하다 보면 리넨실 한 타래로 다양한 크기의 리넨 직물을 만들 수 있다. 리넨 크로스와 냄비 받침 등을 직사각형으로 떠서 만들기 시작한 이후 부엌에서의 뜨개 물의 활용도가 생각보다 높고, 생활 속 작은 기쁨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순한 방법으로 평면뜨기 하는 방법을 숙지하였다면 이제 더 다양한 뜨개에 도전해 보아도 좋다. 나는 나만의 부엌이 생기면 가장 갖고 싶었던 아이템인 티코지(tea cozy) 만들기에 도전해본다. 리넨 타올을 만들 때는 평면으로 가터뜨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평면으로 메리야스뜨기라는 기법을 사용해본다. 겉뜨기로 한 줄 갔다가 직물을 뒤집어서 되돌아올 때는 안뜨기로 뜨는 방법이다. 평면으로 메리야스 뜨기를 하면서 코를 늘이거나 줄이는 정도의 기법만 터득하면 이제는 티코지도 만들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 직사각형이 아닌 다양하게 원하는 모양을 만든 후 뜨개용 바늘(보통 바늘보다 두껍고 끝이 뭉툭한)로 옆 선을 꿰매서 나의 찻주전자에 꼭 맞는 따듯한 옷을 입힐 수 있다.
대바늘과 실과 뭐든지 뜰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준비되었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내가 생각한 디자인에 맞는 패턴을 찾는 일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리고 도대체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티타임 하면 아늑한 토끼굴에서 앞치마를 두른 토끼 아줌마가 따듯한 차와 디저트를 대접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내가 상상한 이미지에 맞는 패턴을 찾기 위해 핀터레스트(pinterest)나 레이블리(ravelry)같은 사이트를 검색해 보았는데 마침 레이블리에서 무료 도안을 찾을 수 있었다 (Mrs. Bunny Rabbit Tea Cozy by J. J. Waugh). 무려 10페이지 분량의 티코지 뜨기 설명서에는 영어와 알 수 없는 기호가 가득 적혀있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뜨개 도안을 읽는다는 것은 또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것과 유사하다. 영어를 할 수 있으면 국내에 번역서가 출판되지 않은 원서로 된 수많은 책에 접근이 가능하고, 일어를 할 수 있으면 자막이 없는 일본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것처럼, K, P, YFWD, K2TOG 등의 뜨개 기호를 이해할 수 있으면 작은 티코지부터 어른용 스웨터까지 영문 도안을 보고 뜨개질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참고로 K는 겉뜨기를, P는 안뜨기를, YFWD는 바늘 비우기를, K2TOG는 두코 모아뜨기를 의미한다. 한 단 한 단 (참고로 단은 row라고 표기) 안내를 따라 뜨다 보면 어느새 결과물의 절반이 완성된다. 나머지 절반은 코 막음 까지 마무리된 각 부분을 실과 뜨개바늘로 꿰매서 연결하는 과정이다. 앞치마를 두른 토끼 아줌마가 아닌 심플한 티팟 모양의 단순한 돔 형태를 떴으면 이 연결 과정이 많이 축소될 수 있다. 하지만 토끼 아줌마를 목표로 한 이상 바늘과 실을 잡고 열심히 꿰매어 본다.
평면으로 메리야스 뜨기를 하며 원하는 형태를 만들고 각 부분을 바늘로 꿰매어 연결하는 동일한 방법으로 웬만한 인형은 다 만들 수 있다. 완성된 토끼 아줌마를 보면 몸통 부분은 찻주전자를 씌울 예정이기 때문에 모자처럼 뻥 뚫려있지만, 이 부분에 솜을 채워 넣으면 인형이 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은가? 이 방법으로 만든 인형이 팔다리가 움직이는 곰돌이와 사계절 옷을 갈아입힐 수 있는 토끼 인형이다 (인스타그램 아이디@babasknit_kr의 도안으로 만듦).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면 여행을 떠나도 새로운 친구를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뜨개 언어를 배우면 귀여운 토끼 친구도 곰 친구도 만들 수 있다. 요즘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코딩을 배운다고 하는데, 우리는 뜨개 언어를 배워보는 것이 어떨까? 언젠가는 토끼 아줌마가 따라주는 따듯한 차 한잔 마시는 날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찻주전자에 따듯한 물이 식지 않도록 옷처럼 입히지만, 스웨터나 클로스(clothes)라고 하지 않고 코지(cozy)라고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따듯한 차를 마신다는 것은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준다는 뜻이 아닐까 유추해본다. 인제 와서 고백하자면, 위에서 내가 티코지를 '가장 필요한'이라고 말하지 않고 '갖고 싶은'이라고 적은 이유는 사실 나에게는 아직 찻주전자가 없기 때문이다. 정수기에서 나오는 온수로 간단한 티백을 우려 마시는 생활에 익숙해져서 지금까지 찻주전자를 사지 않고 미루어두었다. 기계에서 나오는 미지근한 온수가 아니라 팔팔 끓는 물에 찻잎을 풀어놓고 호호 식혀가며 마시고 싶은 계절이 돌아오니 이번에야말로 마음에 쏙 드는 찻주전자를 찾아내고 말겠다는 생각이 든다. 토끼 아줌마의 치마폭에 쏙 맞는 찻주전자를 찾아 마음이 따듯해지는 차를 마실 수 있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