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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hee Mar 29. 2024

너도 나도 불쌍했던 그때


운전을 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이 미국이다.

그러나 아이들을 키우는데는 왕따봉이다.

넓디 넓은 나라이니

마켓도 차 아니면 갈 수가 없어서

눈깔사탕 하나도 아이들 혼자서는 사러 갈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면 뭐하나..나도 아이들과 같은 신세로 집에만 갇혀 살아야 했는데..


남편은 자기 공부에 치여서 가족을 돌 볼 겨를도 없어 보이고
하염없이 푸른 하늘만 바라보고 점점 바보가 되어 가던 어느 날.
그런 나를 안타깝게 여겼던지
다니던 교회 집사님이 책 한 권을 주면서 어서 읽어보라고 하며 운전면허를 따러 가자고 하였다.

한국에서도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만점 받았던 나인지라 ㅋㅋ 꼼꼼하게 공부하여 필기시험엔 넉넉하게 패스!

그러나 실기..
한국말도 아닌 영어로 하는 말을 알아듣고 그 지시에 따라 운전을 해야 한다.
집사님과 함께 연습은 했으나
이빨까지 덜덜 떨리던 그날..

내 이름을 부른 감독관은 하얀 목장갑을 낀 백인 여성이다.
하아..그때만큼 내 오감을 다 작동시킨 날이 내 인생에 몇 번이 있으려나?
귀 쫑긋 하고, 눈을 부릅뜨고,
운전면허 실기 시험에 냄새 맡기라도 있었다면
아마 코도 힘 빡 주고 벌럼 벌럼 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기본 지시는 무사히 통과.
그리고 도로로 나가라 했고 우회전을 하라고 해서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왼쪽 도로를 보니
아주 멀리서 차가 한 대 오는데
그도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오고 있었다.
흠...저 차가 우회전을 한다 신호를 하고 있으니
그러면 나는 나가도 되겠구나 하고
우회전을 하다가
나는 고막이 터져 나가는 줄 알았다.

You threatened my life!
Go back to the parking lot!

니 때문에 나 죽을 뻔했어!
주차장으로 돌아 갓!

어찌나 큰 소리로 악을 쓰는지 머리가 돌 뻔했다.
나는 그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채
있는 욕이란 욕은 다 먹고 불합격!

기다리던 집사님이 왜 이리 빨리 왔냐고?.. 물어
상황을 설명했더니
우회전 깜빡이를 킨 차가 우회전을 안 할 수도 있으니 위험하긴 했다고...

나도 불쌍하고
감독관도 불쌍하고

이역만리 떠나와서 노란 눈의 외국인에게 그리 매몰차게 혼나서 영혼 탈출상태였던 나도 가엾고,
먹고살기 위해 쌩초보들을 데리고 목숨 걸고 도로에 나가야 하는 감독관들도 불쌍코..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혼날 수도 있구나.. 하는 서러움에 눈물까지 흘리고 있는데
집사님이 다른 곳을 가자고 한다.

당시는 30년 전.. 아직 온라인 시스템 작동 전이라
다른 운전면허 시험장과 연동이 되지 않는 상태라서 하루에 몇 번이라도 다시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물론 아니지만.
지금은 연속 3번 떨어지면 드라이빙 스쿨에 가서 교욱을 받아야 한다.

암튼
호달 호달 떨리는 다리로 다른 시험장에 가서 다시 필기시험을 보고 또 도로 주행 시험..
아까 보다 더욱더욱 모든 감각을 세우고
초보가 가장 어려워하는  평행주차도 무사히 마치고
주차장에 들어서는데
건너편에 보행자가 있다.. 흠 어서 지나가세요! 손짓을 했는데 보행자가 나보고 먼저 가라고..
아니야 너 먼저 가세요 다시 손을 흔들었지만
이 눔의 보행자가 또 나보고 먼저 가라고..
이 정도면 그냥 가는 게 맞겠지! 하고 갔다.

그리고 불합격!
감독관이 왜 떨어졌는지 하나하나 설명을 해 주는데
보행자를 보내지 않고 가서 점수가 왕창 날아가서 떨어졌단다.
이거 이거 너무 억울해서
너도 봤잖냐!
내가 두 번이나 양보했는데 그 사람이 절대 안 가고 나보고 먼저 가라고 하는 거!!!라고 항변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두 번이 아니라 백번이라도 천 번이라도 절대 보행자 우선이란다..

그래 내가 잘 못했지.. 뭐든 세 번은 기본인데.. 두 번만 하다니.. 세 번만 했으면 그 사람이 건너갔을지도 모르는데.. 하다가 생각하니 열받네!
아니 그냥 가랄 때 가지!
실컷 양보해 주고 욕먹은 그 사람도 불쌍코
인생은 삼 세 번인데 그 법칙을 무시하여 또 떨어진 나도 불쌍하고..

가까운 다른 데 있으니 한번 더 가자는 집사님에게
도저히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자존심도 너덜거리고
진도 다 빠지고
정말 딱 죽고 싶었다.

뭐땀시 미국에는 와 가지고 이 수모를 당하고.. 물론 내가 모질라서 이기는 했지만.. 암튼 한국에 살았으면 어깨 힘주고 살았을 텐데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빅하사탕의 설경구처럼
나 돌아갈래!!! 를 외치고 싶었다.

그리고 영군지 통본지 이 망할 × 의 남편은 이런 내 속도 모르고
어쨌길래 두 번이나 떨어졌냐고.

너 죽을래!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 굴욕과 아픔과 짜증남을 넘어 넘어

네번째 도전을 하고서야 가까스로

운전면허를 손에 넣게 되었다.

사실 세번째 네번째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암기의 천재 소리를 듣던 나였는데 말이다.

그저 네번째에 운전면허를 땄다..정도의 기억만 남아있다.

선택적 기억상실이라 하던가?..스스로 수치스러워 빡빡 지워버린 거 아닐까 생각한다.

암튼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운전면허를 가진게 중요하지!!
그동안 발이 없어 누군가의 도움에 의지하여 살았던 날들에 안녕을 고하고
나도 이제 두 발로 꼿꼿이 설 수 있게 되었다. 장하다 ㅋㅋㅋ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동병상련으로 맺어진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녀는 주재원 와이프로 나처럼 운전면허도 없고 영어도 짧고 그래서 우울한 날들을 보내다가 나와 우연히 만났고

우린 만나자마자 영혼의 단짝이 되었다. 아니 될 수밖에 없었다.

맨날 만나면 신세 한탄을 하며 서로를 불쌍히 여겼지만 함께 여서 위로가 되었던 나의 단짝!


그 친구가 나보다 더 노심초사 면허 따기를 기다렸다가

내가 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어서 오라고!

축하하자고!
그래서 당당히 혼자 운전하여 갔다.

나보다 더 기뻐하는 그녀라니!

찐 친구 맞다.

아직도 그녀와는 찐으로 지내고 있다.

암튼 그렇게 만나서 신나게 놀고
집에 오려니 비가 주룩주룩 온다..

허거걱!

빗길이라니.. 것도 캄캄한 밤에!

하는 수 없이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

친구는 운전면허가 없기에
친구 언니가 내 차를 몰고
친구 남편이 뒤에 따라오고( 다들 돌아가야 하니까) ㅋㅋ

무슨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아니고 !
암튼
그렇게 나는 무모한 도전을 위해 하나하나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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