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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hee Apr 05. 2024

탈 시체비자 그리고 웬수같은 닥터 쉐프


친구의 한마디가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특히 우리 집은 진짜 그렇다.


박사 시험에 연속 낙방하던 영구남편은 친구의 "미국 가서 공부 하는게 어떠냐!" 한마디에 미국유학을 감행했고


미니멀리스트 둘째는 "집이 이런데 친구 초청은 무리일듯!" 한마디에 요즘 집 꾸미기에 몰입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내 인생이 그렇다


미국 와서 무료의 극치를 달리다가 우울의 늪으로 푹푹 빠져들던 어느 날


영구.. 아.. 사실 그즈음엔 머리는 이미 몇 번을 이발한 상태니까 영구남편은 아니고.. 흠 뭐든 충동적으로 일을 치고 앞만 보고 달려가니까 충동남편이라 할까?^^


암튼 남편의 "공부해 보면 어때?" 하는 한마디가


내 삶을 바꿔 놓았다.


무모한 도전이었다.


왜 공부하게 된 것을 무모하다고 하는가?



나는 이 공부 끝에 좌절감과 흰머리와 위장병을 훈장으로 받았으니까..


그리고..


영어의 나라 미국에서 영어를 전공하다니.. 쓸모없는 공부였으니 말이다.



시작할 땐 설렘과 기대감 가득했었다.


영어교사 휴직 중이었으니


이 공부를 끝내고 돌아가믄 어깨 좀 세울 수 있겠군! 음하하하..


그러나 한 치 앞도 모르는 인간의 계획이었지.


이렇게 미국에 누질러 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난 원체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김희성이 입에 달고 살던 말이다.


난 무용한 것을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유용할 줄 알고 죽어라 했는데


무용한 것이 되어버린 나의 영어.. 아직도 비틀거리는 실력이지만 한국에 갔다면 빛을 발했을 거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으니 얼마나 아까웠으면 그러겠나!!



암튼


그 무용할 운명의 공부를 위해 준비를 했다.


6개월 토플 시험공부는 껌이었다. 내가 누군가? 영어교사로 10년이었으니. 남편보다 월등하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ㅋㅋ 어깨에 자연 뽕이 생길 정도로 내가 자랑스러웠다.



대학을 졸업한 지 너무 오래되어 추천서를 받을 교수님들이 많이 은퇴들을 하셔서 학과장님께 편지를 보내야 했다. 머나먼 외국 땅에서 만학도로 공부하려는 가상한 의지를 부디 꺾지 마소서! 읍소하는 편지를 낑겨 넣어 보내고 이리저리 바쁘게 뛰다닌 결과 마침내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우와.. 나도 미국에서 공부 한다!!!


이제 유학생 와이프가 아니라 나도 유학생이다!!!



유학생은 F1 비자이고


유학생 와이프는 F2 비자  카테고리에 속하는데


이 F2비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공부도, 일도..그래서 속칭 시체 비자라 불리운다.



'비자 스테이터스(visa status)가 뭐예요?' 묻는 게 제일 싫었다.


바보가 된 듯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대체적으로 유학생 와이프들은 아이들을 키우거나 한인 비즈니스에서 캐쉬 잡( cash job: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없으니 현금으로 지급받아야 한다)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쪼들리는 유학생 가정 경제를 그렇게 돕는 아내들을 안쓰러운 듯 그러나 당연한 듯 여기는 게 당시 이민사회의 시선이었다.


여인의 헌신으로 박사가 되고, 검사가 되고, 의사가 되고 그러나 그렇게 헌신하믄 헌신짝 된다던 그 구시대의 유물이 여전히 통용되던 그 때니까 말이다.



난?


왜 내가? 의 꿋꿋함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내가 휴직하고 따라온 거 자체가 희생이고 헌신인데 여그다가 뭘 더 하란 말이얏! 의 자세로.



그러다 옆집 할매..내 운전면허를 따도록 도운 집사님의 친정엄니.. 의 따가운 눈총에 내 기( 氣 )도 자꾸 죽어가고 있었다.



김치를 사 먹는 나에게 시엄니보다 더 잔소리를 하시며


" 아이구 영수 엄마 그렇게 흥청망청 돈을 쓰면 어떡해. 그 비싼 김치로 김치찌개를 하다니. 배추 사서 김치를 담궈 먹어야지!"


"페이퍼 타올을 왜 써. 행주를 써야지. "


"영수 아빠 힘들게 공부허는디 뒤에서 도와야지, 그게 뭐여!"


아.. 끝없는 잔소리, 간섭...



그렇게 시체비자의 설움을 겪고 있던 내가


드디어 공부를.. 아니 그 당당한 유학생이 된 것이니


얼마나 좋았을까!



차를 사면 한 달


집을 사면 일 년 기쁘다 했던가?



그러나 나의 기쁨은 첫날 박쪼가리처럼 깨져 버리고 말았다.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발을 디딘 학교.. 첫날부터 불못이었다.


안 들려.. 하나도 안 들려..


게다가 입은 껌딱지를 붙여놓았는지 떨어지질 않아..


안 들리니 당연 할 말도 없는 거겠지만...



아.. 옛날이여!


시체비자면 어때! 그냥 밥 먹고 뒹굴거리던 그 시절이 천국이었다 여겨지던 그 나날들..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두통만 가득한듯했던 유학생 시절이  또 낭만도 한가득이니


인간 기억의 한계라고나 할까?^^






나의 어드바이저 이름은 닥터 쉐프(Dr. Schaeffer)이다. 그런데 그는 나랑 무슨 철천지 원수를 졌는지


맨날 내 이름 부르는 재미로 산다.


영희! 영희! 영희!


맨날 식상한 영어이름들만 부르다가 이상한 발음의 아시안 이름 부르는 재미가 들렸나 보다 ㅋㅋ



그러고 보면 대만 친구 쇼매의 말이 맞았다.


첫 시간에 닥터 쉐프가 뭔가를 물어보는데


책은 읽어 갔지만 뭔 소린지도 몰라서 멍하니 있었기에


당시 내가 알던 유일한 영어문장이던


" I don't Know."라고 대답했는데


쉬는 시간에 쇼매가 나에게 와서


"너 이젠 클났어. 닥터 쉐프는 첫 시간에 "아이 돈 노우"라고 말하는 사람 한 학기 내내 괴롭힌대.."


라고 하는 게 아닌가?


설마? 했는데


정말 한 학기 내내 수업만 시작하면 곧이어


영희!


으악!! ㅋㅋㅋ



지금이야 ㅋㅋㅋ 웃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쉐프 수업이 있던  화요일 아침만 되면 두통이 몰려와서 사리돈 한 알을 먹어야 버틸 수 있었다.


게다가 나의 두통은 국산이라


미제가 듣지 않았다^^


그 좋다는 타이레놀이나 애드빌이 듣지 않아서


시누이에게 굽실거리면서 한국 두통약 사리돈을 공수해다가 먹어야 했다는...



그렇게 한 학기를 꼬박 나를 괴롭히며


내는 페이퍼마다 피바다를 만들어 되돌려 주었던 닥터 쉐프!


그에게 내가 페이 백! 할 수 있는 시간을 나의 신께서 허락하셨으니 음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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