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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hee Apr 19. 2024

뼈가 타는 밤

대학시절을 돌아보면
공부보다는
MT 가서 즐겁게 놀던 시간들이 먼저 떠오르고,
그 시절 엠티는 캠프 파이어 앞에서
"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이나 "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목청 높여 부르는 것이 요샛말로 거의 국룰이 아니었던가 한다.

유학생이 되겠다 결심을 한 후부터

그런 낭만적인 풍경 플러스 이국적인 풍향을 덧붙여 혼자 설레며 지내다 발을 디뎠는데 실상은 우울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대학원 클라스들은 한 학기에 한 과목당 6개 정도의 페이퍼를

써야 했고, 3과목이 필수였으니 페어퍼만 거의 20개 정도 써내야 했었는데 그중 닥터 쉐프는 써내는 족족 빨간 볼펜으로 온 천지를 물들여서 돌려보내곤 했고
우리는 그걸 피바다..라고 불렀다.



돌아온 피바다 페이퍼를 보며
'아마 닥터 쉐프의 전직이 빨간펜 선생님이었나 보다!' 하며 허탈하게 웃기는 했지만 마음엔 스트레스로 화가 쌓여갔다.

이렇게
너덜거리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한줄기 희망은
캠퍼스 한인학생들끼리 만나 한. 국. 말.로 맘껏 수다 떨며 먹는 걸로 푸는 것이고
돌아보면 대학시절 연가를 부르던 그 낭만과는 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공부에 찌든 유학시절의 최고의 즐거움!
주말의 바베큐파티!

Hooray!!

패밀리 아파트엔 한인 유학생 5 가정이 있었고
나머지는 싱글 유학생들.
그중 우리 집이 제일 나이가 많은 늙은 유학생 ㅋ
어쩌겠나.. 문턱을 낮추고
부어라 마셔라.. 가 아니고
먹어라 떠들어라...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만남을 주선하고 먹거리를 준비하고
5학년, 유치원생이었던 두 아들도 덩달아 형, 누나들을 만날 생각에 행복해하던 모습이 갑자기 그립다.

암튼

시간은 절대적으로 흘러

주말은 꼭 온다는 희망을 가지고

이를 악물고 weekdays를 버텨내면

드디어 주말.
날 좋으면 아파트 앞 잔디밭에서
날이 궂으면 집안에서

바베큐 파티!
그렇게 서로 위로하고 지냈다.

그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을 새기 일쑤고 당시 그렇게 함께했던 사람들 중 일부는
지금도 연락하고 만나는 인생의 귀한 친구들이 되어있기도 하고 혹은 한때의 인연으로 마치기도 했지만 풍문으로 그들의 현생을 듣기도 하니

그걸 시절인연이라 하던가!
파릇파릇 청춘에 만나
이젠 다 늙수그레한 중노년들이 되어있으니..
아.. 세월의 무상함이여!

그런 날들이 계속되니
청춘남녀가 만나는 곳에 남녀 상열지사는 필수라
커플들이 마구 생겨나고 만났다 헤어졌다 그러다 결혼하는 커플이 생기기도 하고 그렇게
다이나믹 한인유학생촌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날은 준홍씨네가  카펫을 새로 깔았다고
시간 되면 와서 구경하라고 전갈을 보내왔다.

당시 학생 아파트는 바닥이 도끼다시( 한국말로는 정말 모르겠음) 라 발이 차가워서 각자가 카펫을 구입해다가 깔았던 때였다.

학생 아파트가 어찌 그리 열악하냐! 하겠지만 워낙 렌트비가 싼 이유도 있지만 미국사람들이야 신발을 신고 사니 그들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라 불평을 할 수도 없었고 우리는 우리의 방식을 고수하기 위해 우리의 주머니를 털어 투자를 했던 것이다.

사실 카펫 구경 오라는 것은 핑계고
껀수 잡아 모임 만들어 놀자는데 이유가 있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신혼부부 M네도 마침 지나가다가 왁자지껄 소리에 조인했고.. 모임의 단위가 커지자 이야기는 더욱 많아지고 그러다 12시가 넘어버렸다.

허거걱!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하며 아쉽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곧이어 M이 울면서 전화를 했다.

선생님.. 우리 집에 난리 났어요.. 흑흑

무슨 일이야 금방 갈게!

 동 정도 건너라 달려가니
정말 M네 동이 난리가 났다.

소방차가 출동해 있었다.

사골국을 올려놓고 잠시 나왔다가 준홍 씨네에서 놀다 잊어버린 거였다.

그렇게 3시간 동안 뼈가 타는 밤을 만들었던 것이다.

제목 보고 응큼한 생각 하신 분, 손!^^


복도가 매캐하다
들어갔더니 유리창이 깨져있고 바닥이 물바다..
소방차가 물 뿌리느라 유리창을 깨고 물을 퍼부었단다.

그냥 국이 아니라 사골국이라
뼈 탄 냄새는.. 지독하다.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냄새가 느껴질 정도다.


그날은 우리 집에다 재우고 담날 가서 하루종일 청소..
벽이랑 모든 곳이 누렇고 찐득한 분진이 뒤덮여서 닦아내기도 힘들었다.

벌금에, 경고에, 같은 동 사람들의 눈총에..
견디지 못하고 M은 마침내 아파트에서 이사를 나가버렸다.

너무 재밌게 노느라.. 그런 일이.

인생에 에누리는 없는 건가?

질량 총량의 법칙은 여기에도 적용이 되는 것인가?

그때 무엇이 우리를 홀린 듯 그리 즐겁게 놀게 만든 건지?

내 울트라 캡쏭 짱인 기억력을 총동원해서 돌려 본 결과 어렴풋이 떠올랐다.

태영이는 캐나다 교포고 어릴 때 이민을 온 친구라  한국말은 어눌하지만 영어발음은 우리 중 최고였다.
이 녀석이 한국에서 온 우리들 앞에서
자신의 영어 발음을 완전 자랑하느라
우리에게 퀴즈 게임을 내기 시작했는데

이게 무슨 단어인지 맞춰라! 였다.

그 중 대부분은 그나마 대충 맞춘듯 그래서 그것들이 지금 무슨 단어였는지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데
딱 하나!
정말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 놀라 자빠지게 한 단어가 있었다.

아라와! ㅋㅋ



캐나다의 수도

ottawa

아무도 맞추지 못하고

다들 give up!

태어나지 않는 한 외국어의 완전 정복이란 정녕 불가능한  것인가?


암튼

그렇게 뼈가 타들어 가고

오타와에  배를 잡고 웃으며

이방의 생경함, 서러움을 서로 위로하던 밤들이

용기라는 근육을 소성케 해 주어

다시 불끈! 일어나 교실로 향하던 우리들!


이제는 그 시간들이 그리운 추억으로 어깨에 내려와 앉아있다.


너무너무 한국이 그립던 어느날

나는 심지어 시어머니를 만나러 가던 그 내키지 않던 길까지도 몹시 그리워하게 되는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그처럼

나를 그리도 못살게 굴던 닥터 쉐프도

지금은 그리운 이름이 되어있다.


닥터 쉐프! 잘 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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