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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hee Apr 26. 2024

윤슬처럼 빛나는 추억들

당시 학생 아파트 앞에서 쿠거 레이크라는 아주 큰 호수가 있었다.
사계절 너무나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거기다가 그곳엔 물고기도 살고 있어서
먹거리까지 제공해 주니 일석이조의 고마운 곳!

남편과 아이들은
주말이 되거나 보통날에도 시간이 나면
낚싯대를 들고 호수로 나가서 물고기 잡는 게 일상이었다.

캣피시가 주 종이었는데
요걸로 매운탕을 끓여
한국학생들을 불러 모아 함께 먹는 게 또 하나의 풍속도가 되었다.

한국에 살 때 한탄강 매운탕이 유명했기에
자주 간 적이 있었고
그때 먹어 본 기억을 되살려
생선 비린내 잡을 겸 해서 된장도 좀 넣고
또 다양한 야채 특히 미나리 넣고
마지막엔 수제비 떠서 넣으면
정말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 되었다는 자화자찬 ㅋㅋ

빈말은 아니고
그때 같이 지냈던 동문들끼리 모이면
아직도 그 매운탕 이야기는 꼭 나온다.
암튼
그렇게 또 전설을 하나 남기고
시간은 흘러서




몇 년 전
그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던 둘째가 가 보고 싶다 해서
캠퍼스 방문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쿠커 레이크에 가서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떠올리며 돌아보다가
허걱!
호수 앞에 세워 놓은 팻말을 보고
우리 가족 할 말을 잃었다는..

이 호수는 수은 등 중금속으로 오염되었으니
여기서 잡은 물고기 먹지 마라!

그 아름답던 추억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
그 맛나던 매운탕의 기억이 공포가 되는 체험을 했다는..

이제 와서 어쩌랴!
그렇다고 그 시절 사람들에게
경고문을 전해 줄 수도 없고..

아직 무사한 걸로 봐서 괜찮겠지 하며 사는 수밖에.



그러나 아무리
호수가 오염이 되었다고 하나
들오리 떼들이 아기들을 데리고 종종종 걷다가
호수에서 헤엄치고 놀던 그 아름다운 광경들,

낚싯대를 메고 호수로 향하던 아빠와 두 아들,

그 호수 위에 나즈막하게 내려앉은 물안개의 환상적인 풍광들은
절대 절대 오염되지 않고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임은 자명하다.

어렵고 힘들었던 그때
고단했던 우리의 시간을 빛내주던 이야기들은
윤슬처럼 가슴에  아름답게 박혀있고

할머니 방의 사랑방 사탕통의 동그란 사탕처럼
가끔 꺼내어 그 단맛에 행복을 느끼며 가는 거..
그게 인생이 아니겠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의미하며, “고향 땅의 봄 바다에 반짝이는 윤슬은 아름답다.”와 같이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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