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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hee May 03. 2024

총을 든 남자와  클램 차우더를 모르는 여자

시간이 유수같이 흐른다더니
그렇게
두통을 안고 살던 학기들도 지나가긴 했다.
그사이 남편은 박사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쓰게 되었고.. 이제 몇 년만 더 있으면 금의환향 ㅋㅋ 하리라 기대를 안고 살아가던 중
당시 미국 유학생들에게 가장 최악의 사태가 일어났으니
IMF..
IMF는 국내 경제가 바닥을 치게 만들고 수많은 가정들이 고통을 당하게 만든 사건이었지만

남몰래 그 타격을 직빵으로 맞은 사람들이 바로 미국 유학생들이었다.
환율이 사악하게도 2000원으로 뛰었으니 달러당 750원에 환전하여 살다가 이건 날벼락도 아닌 핵폭탄급이 되어 모두 넋을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개인의 문제도 문제지만
나라가 망했다고 여겨졌으니
천리 만리 먼 타국에서 나라 잃은 설움을 당하다니...하며 기막혀하던 때였다
다니던 교회에서는 특별기도회를 열고, 조국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달러 모으기 운동, 금모으기 운동을 통해 조금이라도 나라에 보탬이 되고자 했다.


암튼
당시 재벌집 자식들 아니면
다들 돌아가야 하나.. 를 생각지 않은 유학생들은 없었을 듯하다.

우리도 머리를 싸매고 가져온 돈과 가져올 돈을 계산하며 남은 체류동안 지출해야 할 학비, 생활비 등을 계산하며 결정을 내려야 했다.

다행히 크게 모자르지는 않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조금만 보충하면 공부 마치고 돌아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고, 과정을 마쳐 시간이 좀 있는 남편이 일을 찾기로 했다.

같은 교회 식구였던 Y 집사님이 자신의 beauty supply에서 몇 시간 일하게 해 주어서 남편이 흑인 가발 가게에서 마침내 일하게 되었다.

뷰티 써플라이는 머리가 극강 곱슬인 흑인들에게 가발을 팔고 그 가발을 유지하는 화학약품이나 또는 악세사리를 파는 곳으로 한인들이 하는 비즈니스 중 주 종목이다. 지금은 많이 사양사업이 되었지만 당시엔 교포사회 재력가들은 거의다가 뷰티 써플라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곳에서는 가발도 팔지만  여자들이 흑인들에게 눈썹도 붙여주고 또 귀도 뚫어 주는 일로 부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어느 날 공부 스트레스에 찌든 내가
뭔가 스트레스 날려버릴 획기적인 일 없나 하다가
남편에게 나도 귀 뚫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자기가 뚫어주겠다고.. 가게에서 많이 봤으니 할 수 있을 거라며 주인에게 귀 뚫는 건( gun, 총)을 빌려보겠다고 했다. 농담이겠거니 했는데
어느 날  남편이 정말 총을 들고 왔다 ㅋㅋ

저녁을 먹고
총을 꺼내 들고
소파에 앉으라고 하니
당시 6살 둘째가 엄마 총으로 쏜다고 푹풍오열을 ㅋㅋ
아니라고 이게 엄마 죽일라고 하는 게 아니고
엄마 귀를 뚫어서 귀걸이를 하는 거라고
이야기를 해주고 한참을 달랜 후에
다시 남편이 귀를 뚫어주었다.

나도 긴장하고
큰 아이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얼굴에 무서움이 역력했고
둘째는 여전히 흐느끼고 ㅋㅋ

온 가족이 비장한 각오로
엄마 귀 뚫어주기에 온 신경을 고정하고
마침내 빵! 빵 두 방을 쏘아서
반짝이는 귀걸이를 장착한 엄마를 알현! ㅋㅋ하는 줄 알았는데..

근데 짝짹이로 뚫어놓은 ( 망할) 남편이라니..

그래도 어쩌나..
다시 뚫을 수는 없다고.. 그냥 이대로 살자고 결심을 했지만
매일 거울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겠다고 뚫은 귀가 스트레스를 더욱 가중시키게 되었다는. 윽!
공부에 찌든 인생이 화려한 귀걸이라도 해서
기분전환하려 했다가 완전 망해버렸다.

그리고
일주일 후 교회에 갔더니
Y 집사님이 보고 배를 잡고 웃으신다.

이게 뭐야!..

볼펜으로 점을 찍어 놓고 해야 하는데
그냥 빵빵 해버린 결과란다.

이건 아니야! 하시면서
평생 후회한다고
다시 뚫어야 한다고..

할 수 없이
다음날 가게로 직접 가서
다 빼고 다시
빵! 빵! 뚫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미안하다며
남편이 쬐끄만 상자를 내밀어서 보니
다이아 귀걸이.. 물론 비싼 건 아니고
그러나 당시는 이미 말했던 대로 IMF로 경제가 말이 아니었던 때였기에
남편은 선물 사주고 등짝 스매싱을 당하고..
참 불쌍한 인생이었다는 ㅋㅋ





그리고 2000년
마침내 공부를 끝내고 돌아온 조국 대한민국은
그리도 울고불고하면서 구해달라던 그 나라가 더 이상 아니어서 너무 놀랐다.
망했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뭔가 사기를 당한 거 같은? ㅋㅋ

없던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사람들은 불과 5년 전보다 엄청 세련되어졌고..




학교에 복직하고 

부서  환영 회식 장소였던 빕스(vips)   soup corner에서 클램 차우더를 보고 도대체 이게 뭐지? 뭘까? 하는 나를 보고

다른 선생님들이

"N  선생! 미국 갔다 온 거 맞아?"  웃으며 말했다는.


 미국에서 살았다 해도

고단한 유학생들이

변변한 레스토랑 한번 가 볼 수가 없었으니

클램 차우더를 알 리가..

그저 맥도날 햄버거 한번 먹어도

너무 기쁘고 행복했던 나날들이었는데 말이다.


발전된 조국 대한민국이,

IMF를 지혜롭게 이겨낸 조국 대한민국이

대견 대견하면서도

마음속에 씁쓸함이 생겨난 것을

너무 욕하지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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