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ghee May 17. 2024

기억에 남은 워싱턴 디씨 여행

얼마 전 주재원으로 왔다가 가신 어느 분이 마지막 인사를 하시면서 한 이야기가 기억이 난다.
미국에 오면서 가졌던 목표가 영어 실력향상, 골프 치기 그리고 여행이었고 그 목표를 열심히 이루다가 간다던.


정말 내가 봐도 열심히 이루고 가시긴 한듯!^^

암튼
주재원은 여유가 있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그렇다고 유학생 가족들도 그리 예외는 아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의 삶은 한시적이라
여행을 배제하고 산다는 건 어리석다 여겨졌었기에
풍족치 못한 우리 가족들도 열심히 여행을 다녔으니 말이다.

평소 생활비를 아끼고 다른 영역에서 허리띠를 졸라 메고서라도 방학이 되면 동부로 서부로 여행을 떠나는 건 30년 전에도 그렇게 당연시되는 일이었다.

GPS를 끼고 사는 요즘에야 여정이 큰 모험이랄 수 없지만 당시엔 월마트에서 파는 미국 지도 로드 아틀라스 와 야후 지도 그리고 당시 가장 강력한.. 이라기보다는 유일했던 여행 지도서인 "세계를 간다!"미국 편을 가지고 여행길에 오르는 게 기본이었다.




목적지를 가는 여정을 미리 정하고 그에 맞는 야후 지도를 프린트해서 꼼꼼히 한다 해도 중간에 예견치 못한 일이 생기면 야후 지도는 무용지물이 되기 일 쑤이고 그러면 아틀라스에 코를 박고 길을 찾아가야 했다.

gps가 자동차에 박혀있고 혹은 핸드폰 gps로 쉽게 갈 수 있는 요즘은 상상할 수도 없는 시간이었지만
정말 좌충우돌하며 다녔던 그때가 더 익사이팅했다 여겨지는 건
과거는 그리움이라는 요소로 채색된다는 원리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암튼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향한 곳은 동부였다.
나이아가라 폭포나 뉴욕은 늘 꿈에 그려보며 갈망했던 곳이니 절대 빼놓을 수 없었고
보스톤엔 하바드도 있고 조카가 있어서 포함시키고 워싱턴 디씨는 미국의 수도니까 ^^

자동차 안에  이사 가는 집마냥 모든 살림살이를 싣고서 출발을 했다.
나이아가라의 장관은 잊을 수 없고
뭔가 교양과 품격이 뚝뚝 떨어지는듯했던 보스톤의 화창한 날씨와 자유로운 거리, 고색창연한 건물들은 꼭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을 만큼 눈에 아른거리고,
지금은 911 사태로 무너진 쌍둥이 빌딩, 자유의 여신상을 비롯한 너무나 유명한 뉴욕에서의 몇 날도
가슴에 고이 간직하고 있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동부 여행의 기억은
워싱턴 디씨였다.

중간중간 개스도 넣어야 했고 아이들 화장실도 챙기는 등 몇 번 차를 멈추면서
워싱턴 디씨가 다가오면서 바깥 날씨가 점점 더워 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내 머리 안에 생각지 말아야 할 것이 떠올랐다.
워싱턴 디씨?
미국의 수도?
1999년도 미 동부 여행 중인 한 여인의 머릿속은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미합중국의 수도.. 라면
뭔가 품격과 위엄을 갖춘 도시일터..
그렇다면
쓰레빠 찍찍 끌고 가면 안 되는 것 아닐까? 에 생각이 이르자마자
가방을 뒤져서
아이들 옷가지를 골라내기 시작했다.

'얘들아 단정하게 입어야 해!
양말 신고 운동화로 갈아 신어.
민소매 셔츠는 안돼.  반팔 티셔츠로 다 갈아 입어.'

그리고
나도 반팔이지만 블라우스에 긴 바지라고는 청바지밖에 없지만 하여튼 그래도 기니까!
청바지로 갈아입고
나름 격식을 차려서 입었다.



긴바지, 셔츠, 그리고 볼 빨간 둘째




그리고 유니언 스테이션 지하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워싱턴 디씨 관광을 시작했다.

지하를 벗어나자마자
섭씨 40도에 달하는 이상고온의 날씨에 숨이 턱 막혔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처럼 입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 짧은 바지, 얇은 셔츠에 샌달이 기본.
엉?
아니 왜?
여기 대 미합중국의 수도인데?

왜 머리의 회로가 그렇게 돌아갔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워싱턴 디씨는 그냥 관광도시에 불과했다 ㅋㅋ


암튼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얼굴에서 웃음은 사라져 버리고. 엄마의 오판으로 온 가족은 얼굴과 온몸에 흐르는 땀에 쩔어버렸다.
게다가 이미 워싱턴 디씨를 한번 방문했던 남편은
여기저기 보여 준다고 앞장서서 달리다시피 하고 가고 있었다.

어디까지 걸어야 해?
집에 가자.
더워.
힘들어.
아이들은 불평을 토해내고
나도 더 이상은 이 더위에 치렁거리는 청바지를 입고 걷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고만 가자!'
'저기 조금만 더 가면 영원의 불꽃 있어. 그건 보고 가야 해.!'


영원의 불꽃이고 나발이고 정말 다 때려치고 돌아가고 싶지만 사실 이 사태는 나에게도 반의 책임이 있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트롤리밖 백악관을 배경으로


그리고 더위에 지쳐버려 더 이상 걷는 것은 무리라 여겨 트롤리를 타고 그냥 삥 둘러보기로 했다.
안내원이 화이트 하우스 가려면 내려서 구경하고 오라고 했지만
고개 절레절레 흔들며
다들 의자에 앉아있기를 고수하고 ㅋㅋ


즐거운 여행이란 무엇일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스무스하게 다녀오는 것?
웃음과 즐거움만 가득 찬 시간?



우리 가족의 이 워싱턴 디씨에서의 해프닝을 이야기할 때면 모든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어떡해!
너무 재미나요!
기억에 남겠어요!'

그래 그러면 된 거다.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은 그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음번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면 물어보아야겠다.
'그때 어땠니?
즐거웠니?'

아마 돌아오는 답변은
'하나도 생각 안 나는데?'
일 것이 뻔하지만.

그러면
엄마는
또 앨범을 들고 가서 하나하나 그때를 설명하고 있을 것이다.

이전 12화 날마다 불어닥치는 토네이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