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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hee May 31. 2024

끝나지 않는 새옹지마 이야기

친구 Y의 선한 행위로
일단 한숨을 돌린지 얼마되지않아서
한 교민으로부터 놀라운 제안을 하나 받게 되었다.

당시 주유소를 운영하던 한인회장 H 씨가 자신의 주유소 경영 전반을 프로그래밍할 사람을 찾다가 컴퓨터를 잘한다고 인정받은 남편에게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일주일에 1200불 정도 페이를 받고 그 일을 하기로 하면서 우리집은 놀라움에 휩싸였다.

유학생이 학교 외에서 일 하는건
혹 불법이 아니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전혀 아니었다
 한국이 IMF 로 경제가  무너졌던 시기였고 당시 미국국가가 경제가 어려운 몇나라 출신 유학생들에게 임시 노동허가증(working permit)을 발급해 주었기에 다행히  합법적으로 일하는데에 전혀 문제가 되지않았다.

지금이야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따로 있지만 그 시절엔 일반인이 배워서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 대충 하던 때였다.
교육학 전공이던 남편은 교육통계를 하면서 컴퓨터로 통계학을 다루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을 살면서 뭔가 아귀가 맞지 않아 힘든 때도 있지만 아귀가 착착 맞아 떨어지는 때를 만나면 너무 희한하고 놀랍다.
그 일이 그렇게 여겨졌다.
남편이 석사공부를 하면서 밤늦게까지 컴퓨터를 배우느라 늦게 귀가할 때 아내로서는 참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혼자 아기들을 키우고 집안 일을 해야했던 시간들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서 짜증을 내고 투정을 부렸는데
그 일이 이렇게 우리의 어려운 상황을 건지는데 사용되다니..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생기자 인생이 갑자기 무지개빛으로 변했다.
환경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배웠지만 그게 그리 쉬운 말은 아니다.
아무리 주체적으로 살려고 노력해도 인간의 감정은 작은 일에 참으로 쉽게 무너지고 또 흔들리 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도종환님의 흔들리며 피는 꽃 이라는 시가 큰 위로가 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주변을 돌아보면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는듯 의연해 보이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너무 쉽게 무너져서 안타까워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의 모카신을 신고 1 마일을 걸어 볼 때까지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하지 마세요”라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Never judge a man until you have walked in his moccasins.

각자의 사정이 다르고, 각자의 체질이 다르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고 관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많은 사람이 우리의 안타까운 사정을 들었지만 Y 외에는 그 누구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Y 가 특히 고맙지만 그렇다고 당시 가까이 지내던 그 누구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이유다.

그렇게 갑자기 우리는 부자가(^^) 되었다.
평소에 갖고 싶었던 당시 500불 정도 하던 쏘니 비디오 카메라도 한대 장만을 했고, 외식 금지를 당연하게 여기던 아이들에게 레스토랑 음식도 먹여 줄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기뻤다.

곳간에서 정 난다..라는 속담의 진위성을 체험한 시간이었다. 신세만 지던 사람들에게 신세도 갚는 등 진실로 돈의 위력을 인정치 않을 수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일을 시작하면서
납편은 너무 바빠지고 박사 논문 준비에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모든게  다 좋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오래전  절친이 선 만 보고 오면 퇴짜를 놓자 할머니께서 하셨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얘!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데는 없는 법이란다."

세가지 다 갖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산도 좋고 물도 있는데 정자가 없거나, 정자도 있고 물이 있는데 산이 없거나,산 좋고 정자도 있는데 물이 없더라는 ...

공부도 마치고 돈도 벌고 그러면 금상첨화! 일텐데 주어진 시간은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니 그 시간을 쪼개 쓰겠지만 어느 한 쪽이 소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졸업은 늦어지고 마음은 초조해 지고..

공부에, 일에 지친 남편이 조금이라도 쉬려고 하거나 TV를 보고 있으면 내 안에서는 자동으로 화가 솟구쳐 올라왔다.

얼른 끝내고 돌아가야하는데 지금 뭐하는 거야!
TV 볼 시간이 어디있어!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 들이는 것과는 엄청난 거리가 존재한다.

얼마나 힘들고 피곤할까? 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그럴 때가 아니잖아! 하는 생각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석사를 마치고 복직 준비를 마쳤는데
남편의 논문은 갈 길이 멀어보였다.

아귀가 맞아 보였던 일인데
그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인생은 어느 한순간으로 판단할 수가 없다.
인간의 길흉화복이 무상하여 인간의 지혜로는 알 수 없다는 뜻의 새옹지마(塞翁之馬)가 딱 맞는 말이다.

이때 논문을 마치지 못하고 후일에 논문을 쓰게 되어 다행으로 여겨지는 일이 생겼고..또 논문을 쓰게 된 일이 지금 돌아보면 없었으면 좋았을 일이라 여겨지니..인생이란 단 한 순간도 그 진의를 알 수 없는 농무 속을 걸어가는 것인듯하다.

그래서 오늘 나의 삶의 모토가
그냥 현재를 살아가자,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즐거워하지도 말고!
일희일비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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