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은밀한 리그

출렁이는 가정사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쑥쑥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음에 그때도 감사하고 지금도 감사하다.

아이들도 낯선 곳에서 살아내려니 그들도 나름 몸부림을 쳤던 것 같다. 적응하려 애쓰다가 도저히 해결치 못하던 낯선 미국 문화들을 불쑥불쑥 들이미는 통에 언제나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랬기에
미국이라는 나라를 조금 더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음에 또 감사하다.

요즘
시민권 인터뷰를 앞두고 그 유명한 미국시민이 알아야 할 100문제(Civic Test)를 공부하고 있는데 중, 고등 때 배운 세계사 지식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같이 했던 social study(사회) 숙제 도 엄청 도움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 집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 것은 아니다.

첫째와 얼마 전 대화를 하다가 부모로서 별로 해준 게 없어 엄마는 늘 미안하다 했더니
왜 해준 게 없냐고
"우리들 미국에 데려 오셨잖아요!" 하는데 오히려 내가 고마웠다.
자기는 한국에 살았으면 대학도 못 가고 아마도 조폭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나 ㅋㅋ
키도, 덩치도 큰데 공부는 뜻이 없었으니 그럴 것 같다고..

둘째는
B와 C로 깔린 성적표에 얼굴이 찌그러지는 나를 보면
언제나 해맑게
맘!
B is good!
C is average!
A is excellent!

라고 말하던 아이니까.

그러니 아이들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접하긴 해도 아이들이 속하지 못했던 성적 우수한 아이들의 사회엔 깜깜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했던가?
가만히 있을 걸.. 하는 일이 있었고 우리 아들들이 공부 못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떠벌리는 일이 생겨버렸다.

우리 집보다 조금 늦게 왔지만 가깝게 지내 친구가 된 윤기 엄마가 어느 날 물었다.
"미국은 우등상 같은 거 받으려면 공부 어떻게 해야 해요?"

나의 답변은
" 응, 미국은 그런 거 없어요. 성적으로 아이들 우열 나누지 않아요. 평등을 위해 남북전쟁꺼지 치룬 나라잖아요. 그렇게 평등이 이 나라의 기치니까요!"였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지고 등에 땀이 흐른다.

물론 윤기네와 그 후 그런 이야기를 직접 나누지는 않았지만 아이들 졸업식에 함께 있었기에 더욱 *팔리는 상황이었고.

으이그  이눔시키들 공부 좀 잘하지! ㅋㅋㅋ


미국은 은밀하게 불평등한 사회다.
겉으론 아닌 척하면서
뒤로 자기네들끼리 자신들의 우월성을 자축한다고 할까?

돈 많이 내면 대학에 입학이 가능한 기부 입학제도나

조부모, 부모등이 다녔거나 하면 레거시 라 해서 대학에 입학 특전이 있거나 하는 건
이젠 당연시되고 있고 어느 정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어쨌든 나는
아이들이 초등, 중등을 졸업할 때 까지도 미국엔 우등상이 없다! 라고 믿고 있었다.

인간이 그렇다. 자기가 아는 수준으로 세상을 규정하고 그게 다인냥 착각하고 살아간다.

이제 나이가 들고 그게 참으로 얼마나 착각이고 어느 땐 위험천만한지 알지만

그때만 해도 덜익은 과일처럼 풋내가 솔솔 풍기던 때라...

그러다 내가 아는게 다가 아니구나! 하는 큰 깨달음을 갖게 되는 순간이 오는데

부끄럼을 당해도 변화하지 않거나  또 민감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어서 사람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신은 인간에게 분명 성숙의 계기가 될 사건을 계속해서 던져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그 시간은 첫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이었다.
그날 나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우리 아들은  졸업 가운만 입었는데 많은 아이들이 가운 위에 무슨 줄 같은 걸 주렁주렁 걸고 나온 것이다.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어서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도대체 그 줄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되었다.

우등상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걸!
그것은 그들만의 리그라는 걸!

어워드 나잇(Award Night, Award Ceremony)! 졸업식 하루 혹은 몇일 전 날 우등생들과 또 다른 상을 받을 학생들 만 모아서 문제의 그 줄(Honor Cord)을 주고  메달, 상장을 주는 세레모니와 함께 파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허거걱!

게다가
졸업식 순서지에는
졸업하는 아이들 성적표까지 다 올려져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졸업하는 마당에 아이들 성적표까지 올리는 건 무슨 일이야!

뭔가 오묘하게 배신을 당한듯한 기분이었다.

내 맘대로 맘속에 그려온 이상적인 나라가 혹 미국이라고 생각했었나?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중요시하여 전쟁까지 치루며 그걸 쟁취했던 그들의 역사에 내가 너무 많은 점수를 부여했었던가?

그러나
자본주의의 꽃을 피운 나라답게
성과 위주로 그들만의 의식을 치루는 것에 이의를 달 수는 없다. 오히려 은밀하게 의식을 치루는 것을 멋지다 해야 할 듯!

그래도 엄마는

아무리 부족해도

아무리 못났어도

내 아이만 보인다.

졸업식을 마친 아이들을 바라보며
낯설고 물설은 타국에서 공부하느라 수고했다!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이때를 돌아보며 이 글을 쓰다가 문득 ,

작은 아이가 5학년때 속해있던 콰이어( 합창반) 발표회를 하던 그때, 노랑머리 속에 까만 머리를 가진 아이 하나가 오점처럼 박혀 있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가슴이 찡하고 급기야는 눈물까지 흘렸던 그때가 생각났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기특한가?
모든 게 다 낯선 곳에서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모습이라니!

그저 학교 안간다 억지 쓰지 않고 다녀 준건만도 고마웠던 그때를 기억하며
비록 우등상은 없지만
무사히 졸업한 내 아들들이 장하고 대견했다.

다른 집 아이들은 하바드를 가고 예일을 가고 난린데

학교 졸업했다고 대견하다니

팔불출이라 비웃을 수도 있지만.

상관없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내 눈엔 내 아이만 보이고

아이는 엄마를 용케도 찾아내는 우리는 가족이니까!

그리고 마침내 내가 알던 게 틀린 것임을 인정하고 고쳤다.

그 날 나는 내 인생의 나이테에 줄 하나를 그었다.

무엇이든 검증하자!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말자.

미국학교에서도 우등상을 준다!^^

은밀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