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ghee Jun 14. 2024

재미 교포의 민낯

해외교민이 된다는 결정을 하는 것은
그 목적이 무엇이든 어른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른은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다해야한다.
어느 정도 쉽지않을거란 예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것이 본인만의 짐을 넘어서는 순간 후회가 강물처럼 밀려온다.
특히 자식이 그 결정의 희생물이 되었다 여기면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가슴을 찢는 것 외엔 없다.

첫째는 쾌활하고 단순한 성격이라 한번도 첫째가 힘들거라는건 생각해 본적이 없다.
무지했다.

늘 직장생활로 바빠 할머니 손에서 자란 녀석이 손톱을 물어뜯어 속상했지만 그런 사실과 낯선 이방에서의 적응과 연결시키기엔 엄마는 자기 살기에 바쁘고 공부에 치이고 가족들 밥하고 빨래하는 일상만으로도 벅차서 허덕여야했기에 녀석의 마음까지 읽어줄 여유가 없었다고..변명이지만.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었고
이런 저런 과외활동으로 바쁘게 되어 더욱이나 대화할 시간이라곤 아침 등교 라이드하는 차 안이 다였던 때였다.
그날 따라 내가 좀 더 바빴던거 같았고
무심히 내 뱉던 한마디가 녀석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렸던 모양이었다.

"넌 시간도 있는데 동생 좀 돌보지 뭐하냐"는 말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집안이 떠날 절도로 큰 소리로
" 엄마가 알아!
내가 얼마나 힘든지 엄마가 알아!
내가 학교에서 어떤 맘으로 지내고 있는지 엄마가 아냐고!
매일 매일 학교 가기가 죽기보다 싫은거 엄마가 알아!
어떤 차별을 견디고 참고 지내다 오는지 엄마가 알아!

속사포처럼 터져 나오는 첫째의 말을 들으면서
내 마음은 지옥이 되어버렸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다.
엄마가 자식을 향해 갖는 최고의 사랑을 지칭하는 모성애도 자기의 상황이 어느정도 갖춰줘야 고개를 드는 감정인가보다.
나도 나 사느라
내 아이들이 당면할 상황을 다 계산해내지 못하고 살고있었다.
그들도 영어가 어려웠을테고
말도 안통하는 곳에서 한동안은 겉돌았을 것이고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했을텐데
무지했던 엄마는 어느 날부터 영어도 곧잘해서 별 문제없이 지내나보다 판단하고 지나쳐버렸던 것이다.

얼마전 리치몬드를 다녀 올 일이 있었고
하이웨이를 지나다가
Virginia Tech 싸인을 보았다.
그 학교 이름은 학교로서 보다는
스쿨 슈팅으로 더 먼저 알게 되었고
그 중심에는 조승희라는 한인 1.5세가 있다.

학교 총기 사건은 어떤 이유로든 눈꼽만큼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부여해서도 안된다.
그런데 한인 교포 엄마는 그 조승희라는 아이의 이면에 이민가정의 현실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내 아들도 그런 상처를 안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에 놀라고 또 그 아픔을 직시하며 내 마음도 아렸다.

교민 자녀라고 다 그렇게  포악하게 자라는건 아니다. 다만 조승희가 처한 상황이 그의 성격 어떤 부분과 만나서 그토록 잔인한 결과를 빚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도 아이도
낯선 언어, 문화에 적응하느라 서로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이민의 실상.
그들을 보호해줄 어떤 사회적 장치도 없는 상황에 벌거벗은 채 던져진 상황이다.
이민은 누가 떠밀어서 간 것이 아니지 않은가!
너희 스스로의 결정이니 너희 스스로 알아서 살아가야하지 않은가!
하는 질시 속에서 자력갱생, 자력 구원 ,자수성가..자 자 자..의 과도한 물살속에서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하고
거기엔 어떤 법칙도 없다.

어디에 살던지 인생 다 그렇지! 의 법칙에 떠밀려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민자의 고독을 누구와 나누겠는가?

나도 미국교포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지만,
한때 미국은 무지개빛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이라 생각으나
실상은 미국내 하층민으로 그들의 3D를 맡아 일해야하는게 한인 이민 1세대들의 민낯이었다.
그나마 미국교포는 이상하게 포장이 되어 연예인 누구누구가 미국교포와 결혼한다하면
엄청 부자집에 시집간다로 여겨졌으니
그 민낯을 밖에서는 전혀 몰랐었던 시대였으니  말이다.

미국에 와서야 알았다.
그들이 이민의 현장에서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오죽하면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 돈을 벌지만 그 부를 누리는 자들은 멕시칸 파출부들이라고.
아침에 일찍 일나가고 저녁 늦게 들어와 잠밖에 자지않는 집에서
청소하러 온 멕시칸 파출부는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고  저택의 모든 시설들을 누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재미교포들 중엔

전문직종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있고 나름 미국 주류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1세대 부모들의 희생이 바탕이 된 경우가 더 많다.


암튼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외롭게 혼자 커가고 있었고..

조부모가 있으면 조금 다르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그렇게 홀로 자라면서  
아이들의 주 언어는 서서히 영어가 되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부모세대와 소통조차 불가한 수많은 이민가정의 현주소가 문제가 되어 쇠방망이가 되어 돌아온 가장 큰 사건이 버지니아 텍의 조승희 사건이 되었다고 본다.

첫째의 반항은 사춘기와 버무려져서 그 후로 몇년간 집안을 초토화시킨 후에야
얼추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언급했듯이
미국에 데려와 주어 고맙다는 말을 할 정도로 이제는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

폭발과 성숙 사이에
그 긴 시간을
엄마, 아빠는 자숙과 인내로 채우며
지내야했고.

악한 둘째는 이쪽 저쪽 눈치를 보면서

자신만의 방도를 정하고

슬그머니 다가와

"맘, 나는 사춘기 안할게요!" 말하면서 우리를 위로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던가?


그렇게

낯선 이방의 나라에서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힘겹게, 그러나 함께 자라가고 있었다.



* 요즘은 미국이민의 실상이 조금 바뀌어진 부분이 있다. 이 글의 내용은 1996년에 미국에 와서 겪고 느꼈던 내용이라 조금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이전 16화 그들만의 은밀한 리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