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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hee Jun 21. 2024

나는 한국학교 교사입니다  1

미국에 온지 몇달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대충 밥도 할 수 있게 되고
빨래방에서 빨래도 하고 등등 살림이 안정되어 가니 갑자기 하루가 길어지고 무료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기시작했다.
지금 같으면 셀폰 하나로 온세상을 다 헤집고 다니며 시간이 짧다 여겼을텐데
당시는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다 보던 때라
테이프 몇개는 하루 이틀이면 외울 정도가 되어버리니 아직 바깥으로 나가기에는 두렵고 집안에서 할 일들은 제한적이라 답답한 상태였다.
그나마 옆집에 다행이 유학생 부부가 살고있고 그 집 아들 정현이와 우리 둘째가 친구가 되어 가끔 왕래를 하고 있던 때였다.
자주 만나지는 않았지만 몇번의 대화 가운데
정현이 엄마는 나의 몸부림을 감지했던 모양이었다.
어느 날 한인 지역신문에 난 광고 하나를 오려서 가져다 주었다.

한국학교 교사 모집 광고였다.

영수엄마는 한국에서 교사였으니 여기 한번 신청해 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하며 한국학교 교사를 권해 준 정현이 엄마는 당시 집안에 갇혀서  숨이 막혀 터지기 직전의 나를 교민 사회라는 새로운 환경으로 발을 디디게 해 주어 그를 통해  많은 경험을 갖게 만들어 준 사람으로 아직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교민사회에서 서로 얼굴을 익히고 교류하는 몇 안되는 통로는 교회, 한인회 등이 있고 그리고 한국학교가 그 중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초창기 이민자들은
자녀들의 발음이 엉기고 한국적 액센트가 담길까봐 한국말을 쓰지 못하게 하였기에 아이들의 1차 언어가 영어가 되었고 영어가 부족한 부모세대와 소통이 막혀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러나 시대가 조금씩 바뀌고
미 주류사회에서 오히려 자신의 모국어를 잃어버린 이민자들을 좋지않게 평가하는 시류가 생기자 뒤늦게 교민들이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야한다는 의식이 생기기 시작했고 한국학교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물론 그 중심엔 한인교회가 교세를 확장하기위한 방편으로 한국학교를 부설로 세우는 붐이 일어났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는 않는다.

암튼
일주일에 한번의 학습으로 교민 자녀들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습득하기는 힘들지만
한국학교를 통해
그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희미하게나마 인식하고,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조금씩 알게 되고 또 같은 얼굴을 한 친구들을 만남으로 알게 모르게 백인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한다는 면에서 한국학교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 이거라도 해보자! 하고 지원서를 제출했고

나는 한국 학교 교사가 되었다.

주로 토요일에 학교가 있으니 주중엔 늘 한국학교 수업을 어떻게 해야할까가 내 모든 생각의 중심에 있었다. 한 반에 있는 아이들은 한국어 수준이 천차만별이라 그들을 함께 앉혀두고 수업을 하는건 힘든 일이라 어떤 학교보다 티칭의 기술이 필요한 곳이다.

당시 교사 구성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유학생 와이프 들이었다.
일명 시체비자를 가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체비자 소지자들이 뭔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그리고 적은 액수지만 반찬값을 벌 수 있게 해주는 한국학교 교사는 고마움이었고 처음엔 주말의 기쁨이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수백배를 더 벌었을텐데!^^

한국학교의 설립 목적은
한인 2세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쳐서 미국내에서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로이 하고...블라블라..이지만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아이들을 대한 건 아니었다.



그렇게 시작한 한국학교는 만만치 않았다.
토요일 아침 서너시간만 투자하면 되리라 생각했는데..

며칠전부터 학습내용 훑어보고 커리큘럼 짜고..

게다가 내 아이들 숙제 봐줘야하고

토요일이면 늦잠자고싶어하는 아이들 깨워 세수까지 시켜서 차에 태워 가야하니..당시 아이들은 3살.6살 이었기에..

물론 처음엔
내가 사는 지역이라 10여분 가면 되었지만

반년뒤
옆 주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고보니
1시간을 달려가야했기에
피곤이 겹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도무지 공부할 마음이 없는 아이들을 마주해야하는건 고역이었다.


교민자녀들이 제일 싫어하는게 토요일에 한국학교 가는 거라고..
엄마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온 아이들이었기에.

첫해 맡은 아이들은
2.3학년 초등생들이었다.


정말 욕이 나오는 학년 ㅋㅋ
어쩌면 저리도 말을 안들을까!

내 새끼였다면 내다 버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개구지고 한국말은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면서
어찌나 시끄럽게 떠드는지

나의 에너지 도둑놈들!이었다.

떠듬 떠듬 가나다라를 배우고 익혀야하니
쉬울 리도 없고 지루하고 몸이 뒤틀리겠지만..

해도 해도 너무했다.


이제 생각해 보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닌데

당시엔 정말 속이 뒤집어졌다.
한인 이민자 부모들에게 영어 어떻게 배웠냐고 물어보면 다들 자기들만의 에피소드가 한가마니 나온다

그러니
울 아이들도 한글 배우기가 얼마나 어려울지..그때는 사실 잘 이해를 못하고

속으로 한숨 쉬며 어서 클라스가 끝나기를 바라는 못난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조금씩 아이들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두 아들의 엄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영원히 이 미국사회에서는 이방인 이다.

아무리 영어를, 생각을 똑같이 해도 생김새를 바꿀 수는 없는거니까!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들이 명확히 깨닫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당연스레 스트레스를 장착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아이들이 갖는 스트레스를 처음엔 모르고
도대체 부모님들이 가정에서 어떻게 기르길래 아이들이 이토록 천방지축들이지?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 밖에 없었다

​부모님들에게 아이들의 이 산만한 행동을 알려드리면 부모님들은 나를 이상한 선생으로 바라보면서
그럴리 없다고 하시는거다.

​미국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학부모.교사 상담을 하는 날(parent/teachers conference days) 이 정기적으로 있다.

그럴때 가면 자신의 아이가 얼마나 학교에서 조용히 , 행동도 단정히 하는지 모른다는 선생님의 칭찬을 받고있다고

부모님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답변을 하시며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그것도 제일 장난꾸러기 아이들 부모님들께서..

​거짓말은 아닐테고..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처음엔

아이들이 이방인으로 갖는 스트레스와 한국학교에서의 무질서한 행동 사이의 상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한테 문제가 있나?
내 교수법이 잘못되었나?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방법을 바꾸어 봐도 별 효과가 없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면서 문득 알게 되었다.

​나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걸!
내가 한국사람이어서가 이유였다.

​아이들은 미국학교에서는 실제 얌전하다.
얌전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에 그렇다

하얀 아이들 속에서 머리 까만 동양아이는 금방 눈에 뜨이고 또한 스스로도 살짝 위축을 느낄 수 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아이들은 한국학교에 오면 떠드는 것이다.

아이들은 같은 인종안에서 평안을 누리는거였다.

여기서는 자신들이 받아들여질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긴장을 늦추고 자신들의 본연의 모습대로 돌아간 거였다.

물론 정규학교가 아니란 것도 작용했겠지만.

​암튼
나는 이 사실을 알고부터는
마음이 아파서
아이들에게 소리를 칠 수가 없었다.


부모님따라 먼 이국땅에 와서
아이들도 힘들게 적응하며 견디고 있는 것이었음을 알고 아이들을 향해 사랑을 주어야한다는 강한 내면의 외침으로 나도 이전과는 다르게 좀 더 너그럽고 착한 선생님, 친구같은 선생님이 되려고 애썼다.

​​나는 한국학교에서만이라도 아이들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물론 아주 기본적인 질서는 지키게 하지만
엄하게 하지는 않았다.
많이 안아주고, 많이 허용해 주고, 많이 사랑해 주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건 나의 오판이었다.

아이들의 행동은 허용반경을 넘어가기 시작했고 더불어 나의 인내심도그 허용치를 넘어가자 무너지기 시작했다.

내 내면의 변화를 알리없는 아이들은

내가 부드러워지자
더욱 떠들기만 했고

너무 무너진 질서를 잡기 위해

아이들에게 엄포를 놓았지만 그동안 내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잘 아는 아이들에게 먹힐 리가 없었다.



나의 기쁨이었던 한국학교는 어느새 burden(짐) 이 되어버렸다.
주말이 다가오면 두통이 생기고
안그래도 대학원 공부까지  하느라 힘든데 아이들까지  엉망진창으로 떠들어대니
안스럽고 사랑스럽던 아이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감정은 믿을게 못된다.
너무 쉬이 변해버린다.
사랑했던 연인이 헤어지고
영원을 약속했던 부부가 갈라서는
인간세상의 무질서하게 보이는 그 모든 현상은 사실상 오히려 인간 본연의 질서라는 생각이다.
옳다는게 아니라 인간의 실체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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