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높고, 넓고, 많고에 길들여져 살았다.
작고, 낮고, 좁고, 적고 는 가련하고 안타깝고 살짝 부정적으로 들렸던 건 늘 부족함이 있었던 우리 집에서 양육되어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대 비하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작은 것을 아름답게 만든 나라라 특이하긴 하다. 일본 찬양이 아니라, 내가 일본을 후천적으로 엄청 미워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장점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암튼
그런데
미국에 와서 그 모든 게 인간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광활한 미국이라 좋은 점도 많지만 불편한 점이 말도 못 하니까 말이다.
다른 거 다 제치고
교통편에서는 넓어서 힘든 나라다.
좁은 나라 한국에서 이마트가, 코스트코가, 냉동고가 인기인 것이 참 이해가 되지 않지만.. 굳이 이해하려 한다면 한 곳에 다 모아놓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암튼 이 미국이라는 나라는
냉동고가 발달할 수밖에 없고 대형 마켓이 성행할 수밖에 없는 나라다.
한 번에 왕창 사 오지 않으면 그 먼 길을 또 부르릉! 차를 끌고 나가야 하니까.
특히 한인들은 한인마켓 있는 도시까지 나가야 하니까 말할 필요도 없지만.
엄청 사설이 길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자동차가 필수라는 말이다.
한국에서 서울에서 경기도 까지 딱 한번 운전한 것 빼고는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 직장까지 운전하고 다닌 게 다였던 나였다. 10분 거리지만 대중교통수단이 없어서 차를 구입했었기에.
그런 내가 미국에서 차가 내 발이 되어야 했으니 처음엔 참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안전 안전을 머리에 되뇌이며 운전을 했는데
나만 잘하면 되는 일은 아니다.
다른 도시는 아니지만 같은 타운 내의 한국마켓을 다녀오는 조금은 먼 여정의 운전도 이제는 익숙해진 어느 날 어이없는 사고가 나고 말았다.
분명히 초록불이 들어와서 차를 멈추었는데
룸미러를 통해 보니
뒤에서 오는 차가 멈추지를 않았다.
뭐지? 하는 순간 쾅!
정신이 아득했다.
이 낯선 나라에서?
한국에서 일어났어도 어리버리했을 일인데..
차에서 어린 여자가 내리더니
미안하다고 자기가 신호등을 보지 않고 있었다고 거듭 사과를 한다.
괜찮냐고 물어서
괜찮다고 했고 차에서 내려서 보니 범퍼가 구멍이 나있었다.
어눌한 영어와 손짓으로 이거 어떻게 할 거냐를 물으니 보험으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사정을 한다.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보험이 없거나 면허가 없거나 그렇지 않았을까? 했지만 그건 나중이고.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연락하겠다고 하고 차에 탔는데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손이, 발이, 전신이 열병에 걸린 듯 떨리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차에서 내려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운전을 못하겠다고 말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경찰차가 다가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신고를 했나 보다.
경찰이 와서 물었다.
괜찮냐고?
서툰 영어로 뭐라 뭐라 말을 했는데 손도 발도 떨리고 턱도 덜덜 떨리는데 무슨 말을 제대로 했겠는가!
한국말로 해도 힘들 상황에!
그런데 경찰이 전화로 하는 얘기는 정확하게 알아 들었다.
여기 영어 못하는 동양 여자 한 명이 차 사고가 나서 힘들어하는데 앰뷸런스를 보내 달라!
정신이 혼미한 상황이었음에도
그 말을 듣자 얼굴이 빨개지도록 수치스러움을 느꼈다.
내 영어를 못 알아듣는구나.. 하는 자괴감이 스멀거리며 올라와서 더 어지러웠다.
경찰이 연락할 가족을 물어서 남편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고 있는데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들 것에 눕히더니
목에 고정대(?) 암튼 그런 거를 끼우고 들어서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때를 묘사하라고 하면
어. 리. 둥. 절 이 단어만 한 단어가 없을듯하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고
엑스레이 결과는 이상 없다고 하는데 나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인상을 찌푸렸더니
타이레놀 한 알을 주면서 먹으라고.. 그리고 퇴원.
급히 달려 온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교통사고는 늘 다음 날이 문제라고 하는데
두통과 몸이 좀 아픈 거 외에는 큰 이상이 없어서 다행이다 하고 다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는데..
상대방 보험회사가 합의를 해달라고 레터를 보내왔다.
외상은 없으니
차 고쳐주고, 응급실 다녀온 비용 결제해 주고,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500불을 받고 끝내겠다고 하는 서류였다.
남편과 나는 이제 미국생활한 지 6개월.. 초짜였으니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차 고쳐주고 500불까지 준다는데
Why not! 하면서 싸인을 하고 보험회사에 보냈다.
500불 생겼다고 좋아라 하면서
아이들과 외식도 하고...
그리고 6개월 뒤...
앰뷸런스 탄 비용을 내라고. 800불 고지서가 날아왔다.
미국에서 주의할 것은
병원비는 한꺼번에 나오지 않는다.
주치의 검사비, 처치비, 엑스레이 비, 붕대 비, 연고 비, 주사비, 병실 사용비, 등등 모든 분야 별로 시간 간격 넓게 넓게 , 따로따로 고지서가 발급된다.
나의 경우엔 병원비 포함이니까 저 모든 건 다 커버가 되었지만
앰뷸런스 탄 건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언제까지 내지 않으면 신용불량자가 되고 차압을 할 거니까 언제까지 내라는 협박성 멘트와 더불어 온 고지서 앞에서 미국 제도에 무지했던 유학생 부부는 억장이 무너졌다.
나중에 교포 친구에게 말했더니
자기네에게 미리 말하지 그랬냐고.
나 같은 케이스는 엄청 보상받을 수 있는 케이스라나..
두고두고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면서 병원 다니고 보상도 어마어마하게 받을 수 있었다며 ㅋㅋ
그래도 그건 아니지.. 하고 웃었지만
억울하게 800불을 내야 할 땐 정말
사고 때처럼 손도 다리도 부들부들 떨렸다.
그렇게 하나하나 몸으로 체험하며
미국을 배웠다.
산 경험이라고 자랑스러워할게 못되는게 몸으로 체득하려면 정신적, 물질적 소모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며느리도 몰라! 하는 말이 이해가 된다.
어떻게 얻은 노하우! 인데..하는.
그래도 혹 미국 이민을 계획하는 분이라면 언제든 몸바쳐 얻은 미국살이 노하우를 알려드릴 용의가 있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