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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hee Aug 03. 2024

미국이 변해야 한다..그러나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바르고 도덕적이라 생각하는건 어디까지일까 생각본다.
모든게 다 자기 주관적이고 그 기준이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에 있기에
가장 유동적이고 가장 오류가 심한 인간 사상의 영역이 아닐까 한다.

1996년 미국에 올 즈음 이미 한국에서는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 되고 있었다.
우유곽을 펼쳐서 씻어 말리고
요쿠르트 통을 한군데 모으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던 그때였다.
베란다에는 재활용 용품들이 가득가득했기에 보기엔 그리 아름답지 못했지만
잘못 버리면 벌금이 나온다고 했고
또 뭔가 지구 환경 보호에 기여한다는 나름의 뿌듯함이 있어서 따르고 있었던 기억이다.
그렇게 살다가
미국에 온 첫날..기함을 했다.

오랜 비행시간에 피곤했지만
환영 모임이 있다고 남편이 데려간 곳에는
한국사람들이 모여서 교회 모임을 하고 있었다.
파트락으로 각자 가져온 많은 음식을 차려놓고..그땐 미국에서는 각자 음식을 해서 모이는 것을 파트락 이라고 하는지고도 모르던 때...우리가족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우리가 주인공은 아니고 그 모임의 일원이었던 남편의 가족이 온다니까 기다려 준 것이지만.
암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음식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자기들만의 모임을 갖기 위해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안주인 되시는 분이 시커먼 커다란 비닐봉지를 꺼내 오시더니 종이 접시, 플라스틱 컵,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들, 쓴 냅킨들을 마구잡이로 쓸어담으셨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합세하여 시커먼 봉지가 가득차자 또 하나를 더 가지고 나와서 순식간에 집채만한 쓰레기 봉지가 두개가 되었다.

허거걱! 이게 뭐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순간이었다.
이게 뭐지? 아니 쓰레기를 이렇게 버린다고?
물론 불과 1,2년 정도 분리 수거를 하고 살았음에도 이 광경은 정말 몹쓸 짓으로 보였다.

이 큰 나라의 3억 인구가 저렇게 살고 있단 말이 아닌가?
아니 콧구멍만한 대한민국은 야쿠르트 병 하나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려고 애쓰는데 이 선진대국이라는 나라는 뭐 하는 것인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을 듯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소인국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끼리 온갖 최선을 다해도 거인국 한명을 당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

그날부터 나는 혼자서 한국에서 하던대로 분리수거를 해 놓았지만 청소용역회사는 한꺼번에 덤프해 가는 것을 보고는 절망에 가까울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다.자신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에 의해 매우 큰 영향을 받는 존재인 것은 굳이 이론으로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토록 실망하고, 지구를 망치는 주범이 미국이라고 분노하던 나도 어느덧 전혀 분리하지 않고 한 봉지에 다 때려넣어서 버리는 무지한 인간의 대열에 서게 되는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설거지가 귀찮아서 일회용품을 쌓아놓고 쓰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마켓에 가면 비닐봉지를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기에 집안 구석구석 비닐 봉지가 그득하다 못해 그냥 쓰레기로 버릴 때도 많다.

게다가 생수병은 어떤가? 두 아이들이 마셔대니 일주일에 한 박스가 모자른다.

무거워서 여러 상자를 사다가 쟁여 놓는게 어렵지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새의 뱃속에서 플라스틱 물병이 나오고, 태평양 한 가운데에 플라스틱 물병이 모여서 섬처럼 보이는 사진을 보게 되었다.

미국에 처음 와서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걸 보고 기함 했듯이
두번째 기함을 한 날이었다.

그리고
인간을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나 가변적인 존재란 말인가?
바르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그 생각대로  산다고 했지만
어느새 물들어 버린 나란 존재는 이미 놀랄 일은 아니다.

홀로 가는 길에 던져지는 시선은 따갑다.
그러나 그 길이 가야하는 길이라면 그 시선을 견뎌내야 한다.

미국이란 거대한 나라가 이제서야 꿈틀거린다.
자연보호에 조금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재활용도 걸음마지만 시작을 했다.
그렇다고 안한다고 벌금이나 뭐 그런건 없다.

서부나 동부에 가면 마켓 비닐 봉투는 돈을 내야 한다.  
아직 내가 사는 중부는 공짜다.

아직 공짜니까 마구 그 자유로움을 누릴 것인가?
아니면 귀찮지만 장바구니를 들고 다녀야 할 것인가?

내 차 트렁크에는 장바구니가 들어있다.
그런데 막상 마켓에 들어갈 땐
홀딱 잊어버리고 가서 양손 가득 비닐 봉지를  들고 나오는 나는
더이상 도덕을, 바름을 언급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거기에 머물지는 말아야 겠지만.

한국에 방문 가면 재활용이 얼마나 철저한지 깜짝 놀라고 귀찮아서 깜짝 놀란다.

미국에 처음 온 날 마음으로 했던 수많은 질책들을 반성하고 내 삶을 다시 정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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