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우리가 단순히 농촌체험 차원으로 일을 구하는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은 돈이 궁해서였다.
친구의 학원이 아직 자리를 잡은 상태가 아니었다. 빚을 포함하여 들어가는 돈은 많은데 나올 구멍은 적은 상황이었다.
걱정만 하니 힘만 빠지고 뭐라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돈도 돈이지만 마음이 처지지 않기 위함도 있었다.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하는 게 좀 떨리는 일이기도 했고 호기심도 일었다.
알바 제안에 흔쾌히 승낙을 했다. 쇠뿔도 당긴 김에 뺀다고 바로 시작하기로 했다.
토마토 알바를 소개해준 이는 진희 선생님이었다. 흔희 진희 샘이라고 불렀다. 함께 알바를 하자고 했다. 진희 샘한테 알바를 위해 필요한 준비물을 물어보았다.
버려도 되는 웃옷과 장갑, 편한 복장이면 된다고 했다. 토시도 있으면 좋다고 했다.
알바비는 일당제로 시간당 최저임금은 준다고 했다. 시간은 4시간이고 오전 내 끝난다고 했다. 잘됐다 싶었다. 학원 출근 전에 씻고 점심 먹고 갈 수 있는 시간대였기 때문이다.
알바시간은 아침 7시부터 오전 11시까지였다.
덜 더운 시간에 시작하는 거였다.
다음날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실은 5시부터 잠은 깨어 있었다. 긴장한 탓인 거 같았다.
미리 준비해둔 몸빼 바지와 셔츠를 주섬주섬 입고 장갑을 꼈다.
알려준 대로 비닐하우스 동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비닐하우스가 대 여섯동 있던 거 같았다.
주인장이 미리 나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간단한 인사와 통성명을 했다.
바로 하우스 동에 들어가 설명을 들었다. 방울토마토가 내 키보다 훨씬 컸다. 그렇게 큰 것은 처음 봤다. 방울토마토의 제일 밑 한 팔에 매달린 토마토들을 1화방이라고 했다. 그 위가 2화방...
우리는 3화방, 4화방의 토마토를 따는 일이었다. 주의점은 토마토를 꼭지째 따야 하는 것이다. 잘못해서 토마토만 따내면 신선도도 상품성도 떨어진다고 했다. 덜 익은거나 꼭지를 떨어뜨리고 딴 토마토는 그냥 바닥에 버리라고 했다.
처음에는 콘티 박스 하나씩 옆에 끼고 하우스 동의 입구에서 시작했다.
익어서따야 할 토마토와 좀 더 익어야 할 것을 구별하는 게 쉽지 않았다.
미묘한 색깔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새빨간 것과 주황빛이 살짝 도는 것이었다.
구별을 못해 딴 것을 바닥에 버리려니 너무 죄스럽고 아까웠다. 요령이 없어 후드득 떨어뜨린 것도 많았다. 주인장 눈치도 보였다.
기왕 버릴 것 바닥에 버리지 말고 내 뱃속에 넣기로 했다. 토마토의 독특한 향이 터지면서 신선한 맛이 났다.
알바를 같이 온 사람 중에는 진짜 선수도 있었다.
흥얼흥얼 여유 있게 따면서도 벌써 동 끝에 가 있었다.
진희 샘과 나는 마주 서서 토마토를 따게 되었다. 이미 경험이 있는 진희 샘 덕을 많이 봤다. 구별하는 법과 따는 요령을 배울 수 있었다.
방울토마토가 매달려 있는 마디를 '톡'소리가 나게 꺾으면 되는 것이었다.
따는 소리도 경쾌하고 따는 것도 제법 재밌었다. 그래도 한 시간 가까이 하니 허리가 아파왔다. 팔에는 토마토 분이 찐하게 묻어났다. 토시가 필요한 이유였다. 이왕 버린 셔츠에 묻는 건 상관없었다. 얼굴과 머리에 찐이 묻어나는 것은 참기 힘들었다. 따끔하고 가렵기도 했다.
시계가 자꾸만 봐졌다. 두 시간 정도를 하고 휴식시간을 가졌다. 믹스커피와 초코과자가 나왔다. 어찌나 맛있던 지 꿀맛이었다.
알바 경험자들은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나만 얼굴이 시뻘건 해져 있었다. 처음이라 그런지 허리도 무척 아팠다.
방울토마토 농사 중에 토마토 따기가 비교적 수월한 일이라 했다. 이 일에 아무리 습관이 들어 있다고 해도 힘들기는 힘들다 했다.
생물이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를 맞춰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했다. 바쁜 철에 인력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인건비도 만만치 않다 했다.
가격이 폭락해 따낸 토마토를 뒤집어엎은 적도 있다 했다.
잠깐의 휴식시간 동안이나마 토마토 농가의 어려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실수로 따낸 토마토를 미안해서 엄청 주워 먹은 사실도 실토를 했다. 배가 부른 것은 어찌어찌 감추겠는데 입에서 뽀글뽀글 올라오는 토마토 향은 감출 수가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