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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선 Aug 27. 2022

10화- 예초와 가을걷이

예초기와 풍성한 가을 먹거리

예초를 해야 했다.

여름내 덥다고 미뤄뒀던 풀베기였다.

무서울 정도로 자라나는 풀을 더 이상 놔둬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주먹만 한 개구리가 툭 툭 뛰어나오는 걸 보면 아마도 뱀도 있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뒷마당 풀을 메던 친구가 기겁하는 소리를 냈다. 뛰어가 보니 유혈목이였다.

30센티도 넘어 보였다. 굵기도 꽤 굵었다. 그것도 축대 아래 두 군데에서 두 마리씩이나 나왔다.

문제는 낫질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옥수숫대를 자르다 왼쪽 팔에 오십견이 와버렸기 때문이다.

예초기를 사야 했다. 예초기 가격이 꽤 비쌌다. 뿐만 아니라 사용해본 적이 없어 망설여졌다.

낫질도 어렵고 뱀도 출몰한 마당에 친구의 생일선물 겸해서 최대 무이자 할부로 예초기를 구입했다.

부탄가스를 연료로 하는 최대한 덜 무거운 걸로 택했다. 날도 안전한 끈날과 장애물에 부딪히면 꺾이는 날을 골랐다. 보호안경과 보호망도 구입했다.

예초는 내 대신 친구가 해야 했고 안전이 제일 우선이었다.


뜻밖으로 친구는 예초를 제법 잘했다. 무성했던 텃밭이 축구장 잔디처럼 말끔해졌다. 고양이들도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예초를 해낸 우리도 신기하고 신이 나서 텃밭을 몇 번을 돌고 돌았다.


예초로 밭 모양을 되찾은 텃밭은 가을걷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땅콩과 고구마를 시범적으로 캐보았다.

자색 땅콩이 오동통하게 잘 여물었다. 고구마는 먼저 심은 것을 캐냈다. 작년만 해도 진흙뻘에 덩이째 딸려 나와 금을 캐듯 흙에 박힌 땅콩을 캐냈었다. 올 해는 땅콩도 고구마도 주르르 부드럽게 딸려 나왔다. 천연 거름을 많이 준 덕인 거 같았다. 1년 내내 삭인 풀더미와 음식물이 고은 거름으로 잘 쓰였다.

땅콩은 물에 깨끗이 씻어 채반에 널었다.

고구마는 붙은 흙을 살살 털어내고 툇마루에 펼쳐놓았다. 수분을 날린 고구마가 더 달달했다. 어찌나 맛나던지 하루에도 몇 번을 쪘다. 거실은 구수한 고구마 향으로 가득했다.

다 마른 땅콩은 껍질을 까서 멸치랑 볶음을 했다. 훌륭한 밑반찬이 되었다.


다음으로 무를 거두었다. 총각무와 그냥 무를 뽑았다. 총각무는 종모양으로 먹기 좋은 크기로 잘 익었다. 그냥 무도 거의 절반가량이 푸르스름하게 단내를 풍겼다.

쪽파도 자잘해도 먹는 데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우선 그냥 무는 신문지에 싸서 종이 상자에 보관했다. 잘라낸 잎들은 시래기용으로 처마 밑에 걸어 두었다. 겨우내 쓰일 먹거리용이었다.

총각무와 쪽파는 김치를 담았다. 역시 유튜브의 도움을 참조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무가 냉해를 입었었다. 냉해 부분만을 떼내고 줄기를 최대로 살렸다. 소금에 절인 총각무에 양념을 발랐다. 쪽파도 사이사이 넣어주었다.

양념이 흘러 바닥에 칠갑을 했지만 맛난 총각무 김치를 완성했다. 김치통에 담아 거실에 이 삼일 두었다 먹어보니 맛이 그만이었다. 빛깔도 어여쁜 총각무 김치! 몇 번 담아보니 자신감이 조금은 생긴 거 같다. 음식 만들기의 두려움이 깨지는 경험이었다.


콩대와 팥대는 뽑은 그대로 갑바에 씌워 덮어 두었다. 비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콩대는 한꺼번에 하지 말고 시간 되는대로 필요한 만큼씩 털기로 했다. 전에 한꺼번에 털다가 몸살이 난적이 있었다.


고추와 가지, 오이와 토마토 지지대를 걷어냈다.

한여름의 땡볕을 견디고 쏟아지는 폭우를 그대로 맞았던 작물들이었다. 냉해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끈질긴 생명들이었다.

그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 밥상 위를 더없이 풍성하게 채워주었다.

가을걷이를 하며 감사함과 숙연함마저 들었다.

지지대를 고이 한데 묶어 창고에 잘 두었다. 내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말이다.




#시골살이 #예초 #가을걷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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