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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선 Aug 27. 2022

19화- 삶이라는 진실

평범한 일상의 진실과 가치

평범한 일상이 돌아간다.

평범한 일상은  매일이 그날이 그날 같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는 새로운 수많은 순간들로 이어진다.

맹물 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은 나에겐 진실이고 기적이다.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하는 일이 있다.

멀리 뵈는 골짜기의 구름과 하늘을 보는 일과 문밖의 냥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일이다.


창밖은 쨍하게 화창하기도 하고 안개인지 구름인지 코 앞까지 와 있기도 하다.

비도 오고 눈도 내리고  변화무쌍하지만 늘 변함없는 친구 같은 자연이다.

냥이들에게는 쓰담쓰담 인사를 나누며 먹이를 준다. 물도 깨끗이 갈아준다.

냥이들도 야옹~화답을 한다.

뒷마당에 햇볕이 비춰오면 밥을 먹은 냥이들이 햇볕을 쬐며 뒹굴기도 하고 제 몸을 죄 핥기도 한다. 나도 따라 툇마루에 잠시 앉아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맞는다. 생각이 멈춘다. 이대로 스러진다 해도 괜찮을 만큼 차오르는 충만과 감사만 남는다.


거실을 가볍게 쓸고 앉은 고요한 시간, 짧은 명상이나 몸풀기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리고 이완되면 졸음이 솔솔 오기도 한다.

그때쯤 엊저녁에 밀린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마치면 음식찌꺼기를 담은 빨간 양동이와 바구니를 들고 텃밭으로 향한다.

음식물 찌꺼기를 두엄 옆에 둔 고무통에 들이붓고 풀로 덮어준다. 고물고물 한 벌레들이 음식물을 분해한다. 세월이 흐른 뒤 어느새 곱고 기름진 흙으로 변해 있다.

영양 많고 보슬한 흙은 텃밭의 흙과 섞인다. 수많은 작물들을 길러내는 밑거름으로 돌아간다.


텃밭에는 많은 작물들이 자라난다. 밭에서 거두어온 신선한 먹거리들로 반찬을 만든다.

고추 오이 상추 등 그냥 먹어도 맛있다. 양파 장아찌, 마늘장아찌, 깻잎김치, 총각무 김치, 시래깃국, 간식으로 먹기 좋은 옥수수, 땅콩 등등이 있다.

밥상은 풍성해지고 이것을 먹은 나의 뼈와 근육은 튼튼히 유지된다.

내 몸의 안과 밖은 연결되어 있다. 뗄 수 없는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로 돌고 돈다.


어쩌다 마당에 나와 풀이라도 맬라치면 담장 너머 할머니가 부르실 때가 종종 있다.

가지 좀 주까? 해먹을 줄은 아나? 하시며 조리법까지 꼼꼼히 알려주신다.

그 담장 너머로 호박도 감도 팥죽도 넘겨받고 달달한 초코과자도 두유도 수박도 넘겨주었다.

오늘도 할머니 밭에서 공짜로 딴 깻잎으로 장아찌를 담았다. 담장은 있어도 담장은 담장이 아니다. 이미 경계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담장 너머 정이 오가고 마음이 돌고 돈다.


날씨가 좋으면 산책을 다녀오기도 하고 틈틈이 법문을 듣기도 한다. 친구와 같이 갈 때도 있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좋다.

가까운 암자까지 땀을 흘리며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걷는 발자국 소리만 들린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하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있다.

불자는 아니지만 법문은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어떠한 기준 잣대도 집착도 내려놓게 만든다.

함께 사는 친구와도 공통의 관심사가 되어 대화를 나눈다. 따로 또 같이 한 길을 가고 있다.


하루를 마감하는 나의 끄적임 속에서 숱하게 쏟아낸 나의 모습을 본다.

외로움에 몸부림치기도 하고, 상처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울음도 있다. 지치고 아픈 몸에 두려워 떨고도 있다. 자연과 마주하며 조금씩 치유되어 가고 있고, 감사와 행복으로 변해가는 모습도 있다.

어떤 것이 나의 진짜 모습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끊임없이 변해왔고 변해갈 것이다.


매일의 삶 또한 변해갈 것이다.

변해가는 일상의 삶이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왔다. 내가 아무리 용을 쓰고 애를  썼을지라도 될 일은 되고 안될 일은 안되었다.


때론 지친 몸과 마음이 넘어지고 깨져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고통의 삶 속에서 딛고 일어설 지혜를 얻기도 했다.

겹겹이 연결되어 흐르는 삶이라는 이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매일 먹고 자고 움직이며 마주하는 평범한 일상의 진실을 거스를 수가 없을 것 같다.


평범하지만 진실된 그 일상의 삶과 화해하며 좀 더 가볍게 살아간다면,

다시 만날 수 없는 매일의 소중한 가치를 느끼고 실현하며 살아간다면,

변해갈 일상을 두려움이 아닌 가슴 뛰는 설레임으로 맞이할 수 있다면,


평범한 일상이 늘 새롭게 만나는 첫사랑같이

어쩌면 매일의 기적을 맛볼 수도 있지 않을까?


'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길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다'라는 어느 고승의 말처럼 말이다.


   










#삶 #진실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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