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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션펌킨 Oct 10. 2022

비와 함께한 여행

경기둘레길 20 코스

당일치기가 될 지도 모르지만 하루라도 걷기를 해보기로 했다. 나와 여행메이트의 여러가지 현실적 사정으로 안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집에서 첫차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왔고 터미널에서도 첫 번째로 출발하는 차표를 예매했다. 

여름이 지나가는 시기라 여섯시가 지났는데도 밖은 어둑어둑했다. 뜨거운 모닝 커피가 마시고 싶고 출출하기도 해서 우리는 동시에 편의점을 찾았다. 눈 앞에 환히 불을 켜놓은 편의점을 발견하고 동시에 뛰어 들어갔다. 여행을 시작했다는 설렘과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에 나와 여행메이트는 기분이 들떠 있었다. 

커피와 간식을 조금 사고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는 시간에 짧지만 많은 이야기를 했다. 관계가 돈독해 진다는 것은 짧은 시간에도 밀도높은 경험이 곁들여 진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 직감했다. 여행 후 사람에 대한 신뢰를 쌓아갈 수 있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여행 후기는 없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고 나니 마음이 놓여 긴장이 풀어졌는지, 곧바로 잠이 들었고 도착지에 가까워졌다는 안내 방송을 듣고서야 잠을 깼다. 깨어난 후 잠시 오늘의 여행을 점검해 보았다. 어디서 부터 시작하기로 했는지, 경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돌발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하다 보니 목적지 터미널에 도착해 있었다. 이제부터 시작이겠구나 싶으니 배가 고파왔다. 

여행 출발지점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나서야 터미널 근처 편의점에서 아침을 먹었다. 평소엔 일부러도 먹지 않는 컵라면을 세상 제일 맛있는 아침으로 먹었다. 둘 다 아이처럼 즐거웠다. 

여행지가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버스 배차시간도 무척 길었다.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고 나서도 한참을 터미널 안에 앉아서 기다려야 했다. 기사님을 찾아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기다리라는 말 뿐이었다. 친절하지는 않은 동네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기다리던 버스는 기사님이 말했던 시간에 정확하게 터미널 안으로 들어왔고 시내를 돌아 사람들을 태우고 있었다. 눈 앞에서 사라졌던 것은 터미널 근방의 승객들을 태우려고 나갔던 것이었다. 내가 오해를 했구나 싶어 무안했다. 목적지로 올라오는 동안 눈 앞에 펼쳐진 전경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놀랍도록 멋진 광경이었다. 그 버스를 탈 수 있었던 것에 정말 감사했다. 

가평 터미널에서 71-4번 버스를 타면 용추계곡의 종점까지 갈 수 있다. 그리고 가는 내내 용추계곡의 절경을 모두 볼 수 있다. 나중에 다시 가게 될 때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기록해 두기로 했다. 작은 마을버스였지만 온정이 가득한 곳이었다. 승객 한 분 한 분이 모두 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내리는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는 듯했다. 이런 풍경은 옛날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줄 알았더랬다. 흐뭇한 풍경이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여기저기 살펴보고 편하게 걷기 위한 채비를 했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계곡 옆을 걷는 일이라 잠시 두려운 마음도 생겼지만, 골이 깊어 물가에 가지 않는다면 물에 빠질 일은 없을거라는 여행메이트의 말에 서로를 바라보고 웃었다. 

계곡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데크다. 

연인산으로 막혀 있어서 이 곳이 계곡의 출발지인 것인지 정확히 알 수 는 없었지만 산을 올라 봐야 계곡의 전부를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여행의 계획된 일정때문에 연인산을 오르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이 곳부터 시작했다. 

굽이굽이 협곡을 내려오는 내내 감탄의 연속이었다. 산이 높아 골이 깊었고 예상보다 폭이 넓었다. 10월 초 연휴 내내 내린 비로 계곡의 물은 무섭도록 거칠게 흘러 내렸다. 기계의 음악소리가 소음처럼 들릴 정도로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거칠었다. 우산을 쓰고 걷고 있는 것이 거추장스러울 정도였다. 몸을 내밀어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보고 싶었으나 우산에 가려져 볼 수 없는 것들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지나고 나서야 들은 이야기지만, 최근 언론에 이슈가 되었던 사건의 장소가 용추계곡이었다고 한다. 걷는 내내 감탄을 금할 수 없이 황홀했던 곳에서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소름끼쳤다.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그 험한 계곡에서 나약한 인간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웅장한 규모에 겁없이 감탄만하고 다녔던 작고 나약한 나의 존재를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다. 

역방향으로 걷는 바람에 용추계곡의 시작점이 여행의 종결지점이 되었다. 다 내려와서야 계곡의 이야기를 읽을 여유가 생겼다. 비가 많이 왔고 초행길이었고 그러다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다. 꼭 한 번은 다시 올 것을 다짐했다. 그 때는 연인산의 그 끝에서부터 용추계곡을 보며 내려오자고 말이다. 

연인산 안에 있는 계곡이어서 하산 지점에는 연인산도립공원이 있었다. 아직은 준비중인 듯한 모습이었지만 등산객이나 여행객이 쉬어갈 만큼 아늑한 곳이였다. 

계곡을 모두 내려 와서는 식사할 만한 곳을 찾았다. 마을에는 작은 식당도 찾기가 어려웠다. 높은 담장을 따라 한참을 내려오고 나서야 그 곳인 군인 관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관사를 돌아 한참을 내려와 보니 시내가 보였고 시내에 들어와서 처음 찾은 곳이 청년몰이었다. 

청년몰 안에는 다양한 식당과 매장이 있었다. 배가 고팠지만 기억에 남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그렇게 찾다가 만난 곳이 "콩두레"였다. 콩두레 정식을 먹으며 천연 재료의 맛을 음미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짧은 여행의 끝에서 만난 식도락은 여행의 진미였다. 모든 것이 완벽해 지는 순간이었다. 

에피터이저로 나온 잣죽이었다. 고소하고 맛있었다. 입맛을 돌게 하는 딱 좋은 메뉴였다. 

콩두레 식당의 시그니쳐 메뉴, 두부스테이크다. 소스가 특이했지만 달콤하고 담백했다. 두부의 심심함을 달래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할 수 있다면 집에서도 만들어 식구들과 즐겨보고 싶은 메뉴였다. 

한정식 메뉴라면 흔하게 볼 수 있는 황태구이지만 과하지 않은 맛에 한반 더 감동~

가지는 요리하기가 참 제한적인 식재료이지만 맛있는 집은 드문데 이 집은 모든 반찬이 다 맛있었다. 정갈한 사장님도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셨고 함께 일하시는 분들도 가족같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도 다정다감했다. 맛있는 식사를 하고나서 베터리 충전을 위해 잠시 머물렀다. 머무는 동안 따뜻한 커피도 대접받으며 여독을 풀 수 있었다. 

드라이브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흔하지만 우리처럼 배낭을 매고 워킹화를 신으며 걷는 여행자들은 흔하지 않은지 여러 가지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더니 식사 후 나올 때 큰 소리로 응원해 주셨다. 

"화이팅하세요~"

힘이 나는 한 마디였다. 

식사도 했고 다리의 피로도 풀고 나서 숙소를 검색해서 찾았다. 여행메이트의 컨디션이 좋아 다음 날도 여행을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가까운 곳에서 하룻 밤 숙박하고 내일 하루 더 걷기 여행을 하기로 했다. 지도앱을 검색해서 숙소까지 가는 길을 따라 가다가 맛있는 꽈배기집을 지나가게 되었다. 늦은 점심을 먹은 탓에 저녁을 따로 먹기는 부담스러웠고, 숙소가 시내와 조금 멀리 있어서 들어가고 나서 다시 나오기가 어려울 것 같아 충분한 꽈배기와 핫도그를 사가지고 들어갔다. 

화려한 광고 멘트때문에 오히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다 식은 후에도 맛있고, 다음 날 다시 먹어도 맛있었다. 청양고추를 넣어 반죽했다는 핫도그는 정말 지금도 입맛이 다셔지는 맛이었다. 

가평에 갈 일이 있다면 찾아가 볼 만한 맛집이다.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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