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제자, 나를 빚는 시간

4화. 기획자의 몸, 예술가의 마음

by 흙 위의 질문러

나는 전통도예를 중시하는 한 대학의 도예과를 나왔다.

“기술의 끝에 예술이 있다.”

한 노교수님께 들었던 이 말을 오랫동안 품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만났던 교수님들은 정말 그 말의 표본처럼 살아가고 계셨다.

수십 년을 한결같이 흙과 불과 싸우며, 눈으로 보고 손으로 터득한 정수의 기술.

그 앞에 서면 절로 감탄이 나왔다.

진심으로 멋지다고 생각했고, 마음 깊이 부러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에겐 ‘지금 해야 할 이유’가 필요했다.

30년, 40년을 외길로 묵묵히 견뎌온 그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면서도,

과연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이어질 수 있을까?

나 자신을 믿지 못했던 시기가 길었다.

하루하루 쌓다 보니, 어느덧 15년이 넘었다.

하지만 시간으로 따지자면 그분들 앞에서는 한참 어리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아쉬움도 있다.

정말 묵묵히, 시키는 대로, 반복하고 다듬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나는 기술의 정수보다 진심의 전달에 더 끌렸다.

핑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내 진짜 마음이었다.


나는 흙을 너무 사랑한다.

도예는 정말 신비롭다.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고, 그럴수록 더 깊이 빠져든다.

무언가를 만들고 나면, 또다시 새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끝이 없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그 감정이 너무 강해서, 나는 이 이야기를 나만의 방식으로 전하고 싶었다.

그 방법이 궁금했다.

나도 잘 모르는 내 이야기지만, 분명 누군가는 알아줄 것 같았다.

통역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가들도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닐까?

왜 같은 언어를 쓰고 있으면서도, 말이 전달되지 않을까?

그게 지금의 나를 ‘기획’이라는 자리로 이끈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나를 가르쳐준 선생님들을 존경한다.

그분들의 손과 눈에서 나오는 완성도는, ‘기술’이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하지만 그 기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이 있다.

완성도 높은 작품 앞에서도, 나는 종종 그 안에 담긴 삶의 태도와 마음의 흐름을 찾게 된다.

그 갈증이 나를 기획의 길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작품을 전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과 사람 사이에 놓인 이야기와 감정을 연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기획을 처음 배우던 시기—

시간을 달의 움직임으로 표현하고,

손을 쓰는 일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채식주의자의 단면을 들여다보았던 날들.

그 모든 경험이 내게 말해주었다.

기획이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나는 기획자의 몸을 빌려, 예술가의 마음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건 어쩌면, 내가 오래도록 풀어야 할 숙제를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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