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제자, 나를 빚는 시간

5화. 흙으로 기억을 담는다

by 흙 위의 질문러

흙은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

그 말은, 내가 흙을 만지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배운 진실이다.

흙에는 되돌아가려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주전자를 만들 때, 주구의 앞부분을 살짝 틀어줘야 한다.

불 안에 들어갔을 때, 흙이 형상으로 고정되기 전, 반죽되며 물레가 도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가려 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소름이 끼쳤다.

흙은 돌아간다.

흙은 기억한다.

흙은 그 기억대로 몸을 움직인다.

어떻게 눌렸는지, 어떻게 감겼는지, 어디서 흔들렸는지 흙은 다 안다.


그래서일까. 나는 흙을 만질 때마다, 마치 사람을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사람의 성향, 감정, 인품, 태도가 고스란히 그릇에 담기는 것만 같다.

아니, 담긴다. 분명히.

그래서 나는 그릇을 함부로 만들 수 없다.

그 안에는 형태보다 더 큰 무언가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흙은 겉보다 속이 중요하다.

만질수록, 눌릴수록, 흔들릴수록 속에 남는 기억이 많아진다.


옛 어른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물을 그릇에 떠다 놓고 하늘에 제를 올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릇 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담을 수 있다.

기도, 기억, 다짐, 감정...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받아내는 것이 바로 흙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기억을 담는 작업’에 끌린다.

누군가의 감정이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 한때의 삶이 모양으로 남는 자리, 흙으로 기록하는 또 다른 일기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을 나는 흙 안에 담아내고 싶다.

흙은 단지 형태를 만드는 재료가 아니다.

흙은 삶을 기억하는 그릇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이들이 어설픈 손모양으로 눌러 만든 형태에 더 많은 애정을 느낀다.

초심자의 행운이라 부를 정도로, 기술적으로 뛰어난 사람도 따라 하기 힘든 밉지 않은 울퉁불퉁함.

어쩌면 그것이 가장 순수한 형태의 ‘기억’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쁘지 않아도 좋다.

정형화되지 않아도 괜찮다.

그 안엔 그 순간의 감정과 움직임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

누군가에겐 단지 흙 위에 남겨진 손바닥일 뿐이지만,

나에겐 그 아이의 하루, 감정, 존재가 눌러앉은 기록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흙은, 삶의 진짜 조각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이것이

내가 흙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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