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제자, 나를 빚는 시간

6화. 질문하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

by 흙 위의 질문러

15년째 흙을 만지고 있다.

손끝으로 흙을 만지지만, 사실은 마음으로, 어쩌면 머리로 흙을 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흙을 빚고 나면 늘 생각이 남는다.

“왜 이렇게 만들었지?”

“이게 내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어쩌면, 질문으로 살아가는 사람인 것 같다.

무언가를 만들고 나면, 그걸 바라보며 자꾸만 다시 묻는다.

‘왜’라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고, ‘어떻게’라는 질문이 손끝을 타고 전해진다.

그건 단순히 분석하려는 게 아니다.

내 안에 있는 감정과 감각의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그 흐름은 너무 조용해서, 한순간만 눈을 돌려도 스쳐 지나가버릴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붙잡으려 한다. 질문이라는 방법으로.

유추하고, 생각하고, 다시 적용해보며 되묻는다.

남겨두기 위해서.


하지만 그런 방식은 때로 나를 지치게 만든다.

자신감도 잃고,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이게 의미가 있는 건지 흔들릴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간 속에서 항상 또 다른 방향이 열려왔다.

흙은 늘 가만히 옆에 있었고, 나는 그 옆에서 끊임없이 물었다.

그리고 그 질문들 덕분에, 나는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더 유연해졌다.


어쩌면 이게 나의 스타일이다.

흙을 만지는 예술가이자, 질문하며 흐름을 읽어내는 사람.

흙은 내가 던지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진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조용히 다음 문을 열어준다.


나는 때때로 흙을 만지는 게 조금 꺼려지기도 한다.

흙 앞에 서려면, 내 마음이 단단히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날엔 차라리 손을 대지 않는 게 낫다고 느껴진다.

흙은 너무 정직해서,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그대로 비춰버린다.

조금만 흐트러져 있어도,

조금만 집중이 부족해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는다.

그걸 알기에, 나는 여러번 망설이고, 주춤한다.

작업이 쌓이기보단, 질문이 쌓여간다.

지속적으로 해야 늘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줄곧 자기 타협을 하고야만다.

“지금은 아니야.”

“지금의 나는 온전히 이걸 감당할 수 없어.”

그런 말들로 나를 설득하며, 멈춰 선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다.

그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흙을 ‘지속적으로’ 하지 못하더라도,

흙을 떠나 있던 시간이 쌓여

다시 만날 때마다

조금 더 깊어진 마음으로

흙 앞에 서게 되니까.


겁많은 나의 방식도,

결국은 흙과 내가 맺고 있는

질문과 응답의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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