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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열 Jul 14. 2024

오늘이 가장 젊은 날

 TV를 켜놓고 식사하는 중이다. 이게 습관적인데, 두 가지 일을 하려니 시청이라기보다는 청취에 가깝다. 화면을 보진 않지만 그래도 한편에서 뭐라고 떠들고 있는 게 편하다. 고약한 습관이다. 어쨌건 그러고 있는데 이런 말이 들린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인데 열심히 살아야죠”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그래서 거의 관용구처럼 쓰이는 말. 웬일인지 새롭지도, 감동스럽지도 않은 그 말이 귀에 꽂힌다. 그래서 한 번 뜯어본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 이라는 말은 오늘이라는 지금, 이 순간의 반대편에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을 놓고, 상대적으로 봤을 때 오늘 이 시간이 가장 젊다는 말이다.

 젊은 사람들보단 나이 든 사람들이 대체로 많이 쓰는 편인데, 그렇다는 건 늙음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의미(쪼그라듦, 주름짐, 편협함, 역할의 축소, 위축됨, 쓸모없음 등)보다 젊음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역동성, 가능성, 탄력성, 활력성, 희망적, 기대감, 신선함 등)가 좋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젊음이라는 단어를 내세우는 것일 테고. 그런데     


 과연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 맞을까? 아닐 수도 있다. 관점을 바꿔보자. 이제 오늘이라는 지금, 이 순간의 반대편에 살아온, 그래서 지나간 날의 시간을 놓고 상대적으로 바라보자. 그러면 오늘 이 시간은 가장 늙은 날이 되어버린다. 지금, 이 시간이 가장 젊은 날이기도 하지만 가장 늙은 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오늘은 젊지도 늙지도 않은, 그냥 오늘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왜? 굳이 가장 늙은 날이 아니라 젊은 날이라는 말을 관용구처럼 사용하는 것일까? 과거에 비해 지금이 늙었다는 과거 지향형보단, 미래에 비해 지금이 젊었다는 미래 지향형이 더 긍정적이고 희망적이기 때문에? 늙음의 부정적인 이미지보단, 젊음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살아가자는 다짐 같은, 뭐 그런 거?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젊었으면 하는 늙은 사람들의 바람? 이유가 뭐든 당연한 거 아닌가 젊어지고 싶다는 욕망.   

  

 늙음에 관해 관용구처럼 쓰이는 노래 가사도 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처음 들었을 땐 뭐야 사람이 과일인가? 했다. 관용구처럼 쓰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사를 한 번 뜯어본다. 이 또한 늙음을, 늙음이 가지는 부정적인 의미보단 익음이 가지는 긍정적인 의미(성숙, 완숙, 완전함, 완벽함, 완성됨, 맛있음 등)로 바꾸어 표현한 것 같다. 늙는다는 게 싫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도, 늙음을 피할 수도 없다.      


 오늘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삶에 대한 태도가, 삶의 방향이, 삶의 내용이 달라질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고 굳세게 믿으면서 젊게 살 것인지, 늙는 게 아니라 완성됨을 향해 익어간다고 우기면서 살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일 테지만, 매일매일의 오늘을 소중하고 충실하게 살아내는 게 정답이 아니겠나 싶다.     


 재력으로 상징되는 황금보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소금보다, 지금이 더 소중하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지금, 이 순간, 이 시간, 오늘이 소중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 소중한 오늘을 젊은 마음으로 맛있고 멋있게 익어가자. 그게 주어진 삶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일 테니.


이인성-해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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