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에 물을 주는 날이다. 베란다에 있는 화분들 중 비교적 널찍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군자란 잎사귀 사이로 짙은 분홍빛이 뾰족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올해도 변함없이 꽃을 피울 모양이다.
약 20여 년을 함께 했는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꽃을 피우는 고마운 녀석이다. 물론 20년 전의 그 군자란은 아니다. 마치 새끼를 낳듯이 작은 촉을 틔우더니, 어느 순간 원래의 군자란은 시들어 버렸고 새로 촉을 틔운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세대교체를 한 셈인데, 변함없는 개화가 고마울 따름이다.
음지쪽 베란다에 자리 잡고 있는 난초들에게로 향한다. 몇몇 분에서 여린 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아직 노란색을 다 벗어 버리지 못한 앳된 모습이다. 모든 생명체의 어린 모습은 예쁜 것 같다. 고개를 돌려 옆의 난 분을 본다. 시들어 가는 난초 잎이 보인다. 여기도 이렇게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나 보다.
난초가 꽃을 피우면 기분이 좋아진다. 난초꽃은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한 색과 짙은 향을 뿜어낸다. 난초가 꽃을 피우는 건 두 가지 경우란다. 모든 조건이 꽃피우기 좋은 조건인 경우, 아니면 죽기 직전. 우리 집은 아무래도 후자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씁쓸하다. 그러니 반성하자.
철쭉과 천리향의 초록빛도 싱그럽다.
철쭉은 길고 빼빼 마른 가지 때문인지 화분에서는 잘 키우지 않는 것 같은데, 봄날의 화려함이 좋아서 함께 하고 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매년 봄 연분홍 꽃잎을 피워내는데, 군락지에서의 흐드러짐도 좋지만 한 포기에서 피워낸 귀한 화려함도 그에 못지않다. 근데 이 녀석 가끔 계절을 착각한다. 초겨울에도 슬그머니 꽃잎을 터뜨리니.
천리향처럼 허풍스러운 이름도 귀할 것이다. 꽃의 향기가 천리를 간다나? 처음에는 흙이 좋지 않았는지 시들시들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자리를 잡은 모양새이다. 짙은 분홍으로 피기 시작하여 점점 흰색으로 변해가는 모습도 좋지만, 진짜 천리를 갈 것 같은 진한 향을 품은 것이 천리향 꽃이다. ‘꿈결의 사랑’이 꽃말이란다. 잘 어울린다.
지치지도 않고 지겨울 정도로 꽃을 피우는 녀석도 있다. 꽃기린이 그것인데 항상 꽃을 피우고 있어 귀히 느껴지지도 않는다. 곁에 있는 사람이 소중한 줄 모르고, 풍족하면 귀한 줄 모르는 것처럼.
어느 날, 어느 가게의 유리창을 통해서 본 오동통한 잎과, 마냥 초록색이지만은 않은 색깔과, 각각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것에 빠져 하나둘씩 함께 하게 된 다육식물은 가장 햇살이 좋은 베란다에 자리하고 있다.
처음에는 참 많이도 잃어버렸다. 뜨거운 여름날, 목말라할 거라는 생각으로 물을 주면, 햇볕과 물이 만나 더욱 상승하는 온도로 인해 녹아 버렸던.
이제는 가끔 꽃을 피우기도 하는 수준에 이르렀는데, 게으르게 피는 만큼 예쁜 것이 다육이 꽃이다.
다육이를 보노라면 사람의 생애를 보는 것 같다. 오동통한 잎 하나를 떼어 화분 한 편에 놓아두면 작은 잎을 틔우고, 그 잎이 뿌리를 내릴 때까지 원래의 잎은 자기를 희생하며 말라간다. 마치 자식이 장성하여 혼자 힘으로 살 수 있게 한 후, 생을 마감하는 인생사처럼.
잘 꾸며진 정원에서 핀 꽃이나, 전문가의 손길에서 피어난 꽃은 멋지고 아름답다. 그러나 내 손으로 피워낸 베란다의 꽃이 더 귀하고 예뻐 보이는 건, 함께 한 시간이 있고 키우기 위한 정성이 들어 있어서 그런 것일 게다.
인생도 그런 것 아니려나? 내 정성이 들어가 있는 삶이라는 것. 그래서 소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