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의 함정, 사기
한때 자전거 사업을 하던 시절,
그는 하나의 신기술을 알게 되었다.
이름 없는 발명가의 투박한 아이디어였다.
완성도도, 설명도 거칠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가능성이 담겨 있었다.
제품으로만 구현된다면
충분히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 만큼
잠재력이 큰 기술이었다.
직접 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그 기술이 세상에 나오는 데 힘을 보태는 일이라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쉬는 동안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자’는 마음으로
발명가를 돕기 시작했고,
기술 개발을 위한 벤처 회사 설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선택이
이후 2년간,
그를 소송의 소용돌이로 끌어들일 줄은.
투자 유치는 그가 직접 맡았다.
벤처캐피탈과 개인 투자자들을 만나
기술과 비전을 설명했다.
그러나 기관투자자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기술은 흥미롭지만, 너무 초기 단계입니다.”
대신 개인 투자자 쪽에서
가능성이 열렸다.
두 명의 투자자가 각각 투자 의사를 밝혔다.
그중 한 명은 개인 자금이 아닌,
현재 진행 중인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의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초기 투자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SPC의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성사되면
추가 투자를 이어가는 구조였다.
그는 두 투자자를 설득했다.
함께 초기 투자를 진행하고,
SPC의 추가 투자가 들어오기 전까지
최소한의 기술 개발을 이어가자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초기 투자금이 들어왔다.
SPC의 추가 투자까지 이어진다면
몇 년은 기술 개발을 지속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SPC의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거의 다 됐다”는 말만 반복될 뿐,
몇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실체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 사이,
기술 개발을 위해 아껴 써야 할 자금 일부가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명분으로 한 비용으로 빠져나갔고,
또 일부는
도무지 사업과 연결되지 않는 용도로
지출되고 있었다.
며칠을 들여다본 끝에
그는 확신했다.
그대로는 갈 수 없다는 것을.
SPC에 대해
명확한 선이 필요했다.
추가 투자 기한을 분명히 정하고,
그 기한까지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법인을 해산해
남은 투자금이라도 돌려주자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기한은 지켜지지 않았다.
“거의 다 됐다”던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끝내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합의된 대로
법인 청산을 요구했다.
그러자 역제안이 들어왔다.
법인은 자신들이 알아서 운영할 테니
대표이사인 그는 빠져 달라는 것이었다.
이미 관계자 모두와
협의가 끝났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세우고,
자신이 책임지려 했던 회사에서
퇴출되다시피 밀려나듯
떠나야 했다.
그리고 몇 달 뒤였다.
난데없이 법원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SPC의 추가 투자는 여전히 성사되지 않았고,
초기 자본을 거의 소진한 투자자들 사이에서
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불똥이
그에게로 튄 것이었다.
SPC를 상대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개인 투자자 한 명이,
그가 설립 당시 대표이사였다는 이유로
투자금 전액을 돌려달라는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전세자금에 가압류가 들어왔다.
이어 사기 혐의로
형사 고소까지 이어졌다.
상대는 알고 있었다.
그가 수년간 벤처를 전전한 끝에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압박을 통해
협상으로 돈을 받아내려는 시도였다.
몇 달에 걸친 법적 공방 끝에
민사와 형사 모두에서
피고의 잘못이 아니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상대는 멈추지 않았다.
항소, 그리고 상고.
민사도, 형사도 2심으로 이어졌고,
또다시 패소하자
3심까지 물고 늘어졌다.
2년에 걸친 긴 소모전 끝에
모든 소송은 승소로 끝났지만,
그는 이미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는
모두 겪은 뒤였다.
그렇게 벤처 세계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피말리는 2년의 소송을 통해
그는 마지막 교훈을 얻었다.
벤처는 실패하면
사기로 몰릴 수 있다.
특히
투자를 가장한 위험한 자금이 섞여 있을수록
그 가능성은 더 커진다.
선의를 악용하는 사람들은
그 구조를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남의 말과 돈을 믿고
쉽게 벤처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끝까지 책임질 수 없는 구조라면,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시작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