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히치하이킹 5. 스톡옵션, 약속의 유통기한

스톡옵션, 약속의 유통기한

by Coo Lee

함께 일했던 부하직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벤처에서

해외 사업을 맡아줄 사람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미 대표이사에게는 말을 해 두었으니

서로 만나 생각을 나눠보자고 했다.


기술력은 나쁘지 않았고,

매출도 어느 정도 발생하고 있었다.

대표이사는

국내 시장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고,

글로벌 시장을 열어 줄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다른 벤처들과 마찬가지로

그 회사 역시 자금 사정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연봉은 낮추는 대신,

차액은 스톡옵션으로 보상하는 구조였다.


그는

벤처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입사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스톡옵션 계약서를 받았다.


그는 잠시 멈춰 섰다.


스톡옵션은

5년에 걸쳐 매년 20%씩 부여되는 구조였고,

상장 이후에도

기관투자자들이 모두 엑시트한 뒤에야

행사가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게다가

연간 행사 비율은

20%를 넘길 수 없다는 조항까지 붙어 있었다.

사실상

행사 시점을

끝없이 뒤로 미루기 위한 구조였다.


더 놀라운 것은

행사 가격이었다.

주당 가격은

이미 장부가의

15배 수준으로 책정돼 있었다.


회사 가치가

그보다 낮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기존에 투자한 벤처캐피탈의 동의를 얻기 위해

불가피한 조건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그는

대표이사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이 구조와 조건이라면

의미 있는 보상이라고 보기 어렵고,

조정이 어렵다면

가격이라도 현실적으로 낮춰 달라고.


대표이사는

곧 열릴 주주총회에서

벤처캐피탈과 논의한 뒤

답을 주겠다고 했다.


그는

그 말을 믿었다.


그리고

그 사이 일에 집중했다.


회사의 기술과 시장을

차분히 들여다보던 중,

두 개의 작은 문을 발견했다.

하나는

대만의 대형 편의점 체인 유통,

다른 하나는

홍콩 약국 유통망을 여는 일이었다.


입사한 지

석 달 만에,

회사 설립 이후 처음으로

수출 물량이 선적되기 시작했다.


매출은 크지 않았지만

매달 꾸준히 이어졌고,

그 속도라면

연간 매출의 10% 정도는

충분히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주주총회가 끝난 뒤에도

대표이사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찾아가

스톡옵션에 대한 결정을 물었다.


대표이사는

아직 그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고 했다.


다른 임원이

조용히 귀띔해 주었다.

늘 그런 식이었다고.

그렇게 실망하고 떠난

임직원들이

이미 여럿 있었다고.


그제야 알게 되었다.

대표이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벤처의 자금 제약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스톡옵션이라는 좋은 제도를

실제로는 행사 가치가 없도록 설계해 놓고

보상인 것처럼 제시하는 방식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특히

베스팅과 행사 조건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임직원들에게는,

스톡옵션이라는 허울이

실제 가치보다 훨씬 크게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는

그 이후에도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신뢰할 수 있는 리더인지,

오랜 시간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

지켜보았다.


그리고

확신했다.


중요한 약속을

세 번이나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사람은,

사람을

동반자가 아니라

소모품으로 대한다는 것을.


그는

그 회사를 떠났다.


그 이후

그 회사의 수출은

다시 제로로 돌아갔다.


참고로

15년이 지난 현재,

코스닥에 우회 상장된

그 회사의 주가는

당시 스톡옵션 행사 가격의

3분의 1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만약

그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었다면,

낮춘 연봉과

그간의 기여에 대한

보상 기회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되었다.


벤처에서의 스톡옵션은

미래의 보상이 아니라,

현재 리더의 책임 있는 약속이라는 것을.


그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야말로

벤처를 더 큰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진정한 리더의 그릇이라는 것을.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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