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문제의 시작, 조직이었다.
안 되는 회사에는
사람, 조직, 제품, 그리고 시장 중
어딘가 반드시 문제가 있다.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가’를
정확히 묻는 순간,
턴어라운드는 시작된다.
어느 날,
위험하지만 의미 있는 기회가
그에게 찾아왔다.
생명과학 산업에서 필수적인
다양한 분자 및 물질 분석 장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소프트웨어와 소모품을 공급하는
미국의 글로벌 기업.
그 한국지사를 맡아 달라는 제안이었다.
회사는 지난 10년 동안
낮은 한 자릿수 저성장의 늪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연간 7퍼센트 안팎의 목표를
단 한 번도 달성한 적이 없었다.
시장은 분명 성장하고 있었지만,
회사는 그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경쟁사에게 조금씩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그 결과
조직의 사기는 이미
회복이 쉽지 않을 만큼
가라앉아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윤리적 이슈까지 터졌다.
한국지사장은 퇴직했고,
회사는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게 되었다.
100명이 넘던 조직에서는
이미 일부 인력이 회사를 떠났고,
남은 구성원들은
불안한 균형 위에서
한 달, 한 달을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재의 풀과 제품의 경쟁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일부 영역에서는
경쟁사보다 뛰어난 기술도 있었고,
시장은 여전히
충분한 성장 잠재력을 품고 있었다.
그럼에도 회사는
성장하는 시장 한복판에서,
가장 강점이 있는 영역에서조차
마켓쉐어를 계속해서 잃고 있었다.
그는 부임 후
석 달 동안 말을 아꼈다.
성급한 처방보다 정확한 진단이 먼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직 안과 밖을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들여다보았다.
사람을 보고,
구조를 보고,
시장과 조직이
어디서 어긋나 있는지를
하나씩 확인했다.
그리고 확신에 이르렀다.
문제는 시장도, 제품도, 사람도 아니었다.
조직이었다.
타겟 시장은
전혀 다른 네 개의 산업으로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었지만,
조직의 체계와 기능은
그와 전혀 다른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그는 먼저
네 개의 타겟 시장을
명확히 정의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맞춰
영업, 마케팅은 물론
고객의 분석 목적과 사용 방식을 설계하는
산업별 응용 솔루션 개발 조직까지 포함해
다시 구분해 정렬했다.
각 타겟 시장을 책임질
선두 리더 역시
분명히 세웠다.
처음 한두 달은
저항이 없지 않았다.
특히 영업과 솔루션 개발팀의
심리적 부담이 컸다.
지역 단위로 움직이던 체계가
타겟 시장 중심으로 바뀌면서
전국 단위 출장이 늘어났고,
그에 따라 업무 방식과 생활 패턴 모두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우려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한 것은
본사도, 경영진도 아닌
현장의 리더들이었다.
조직 변경 전에는
출장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서로 다른 네 개의 기술과 시장을
동시에 이해해야 했고,
각기 다른 언어를 쓰는 고객들과
피상적인 대화를 반복해야 했다.
이제는 달랐다.
각 팀원이
하나의 타겟 시장을
정조준하게 되자,
고객의 기술과 고민을
훨씬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대화는 빨라졌으며
솔루션 제안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조직 재정비 후
첫 분기가 지나자
변화는 숫자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0년 동안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던
분기 목표 달성.
그리고 그 다음 분기에는
목표를 뛰어넘는 현실적인 수치가
분기 초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두 자릿수 성장이
실제로 만들어졌다.
회사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임직원들의 표정이 밝아졌고,
필드에서 뛰는
영업·마케팅 조직은
다시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성과는 우연이 아니었다.
시장을 기준으로 다시 정렬된 조직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러나 진짜 달리기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