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달 만에 잘릴 뻔한 인턴이 가장 인정받는 팀원이 된 이야기
24살 4월,
나는 첫 회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그 해 7월 수습 기간이 끝나는 날
나는 수습탈락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아니러니 하게도 그 회사를 2년 가까이 다녔다. 내가 먼저 퇴사 통보를 하기 전까지.
첫 회사의 3개월
대학교 3학년 휴학 중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과외를 하던 플랫폼에서 먼저 채용 제안이 왔다. 그렇게 생각에도 없던 콘텐츠 마케터라는 직무로 첫 직장에 입사했다.
사실 난 살아오면서 크게 어려운 게 없었다.
노력하면 하는 만큼 됐고, 그래서 원하는 건 대부분 이뤄냈다. 크게 뛰어난 것도 없었지만 크게 못하는 것도 없었다.
첫 회사에서도 크게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 없었다.
튜터들의 초고를 받아 가공해 글을 쓰면 됐고, 이벤트가 시작되면 관련된 배너를 디자인하면 됐다.
그런데 스타트업에서 중요한 건, 그저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어떤 식으로 하든 성과를 내는 것이라는 걸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나는 주어진 일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배너 디자인을 더 잘하기 위해 타사 배너들을 리서치하고 분석해 템플릿을 만들려는 시도도 해보고, 콘텐츠 제작을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콘텐츠를 멀티 유즈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콘텐츠와 배너로 인해 더 많은 고객이 유입되고 최종 신청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부분에 있어 당시의 나는 여러모로 부족하기도 했다. 디자인 실력도 아직 학생 수준이었으며 대박 콘텐츠를 만들어 고객을 끌어오지도 못했다. 더하여 회사에는 디자이너도, 콘텐츠 마케터도 없었다. 나는 많이 부족했지만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었고 스스로 성장해야만 했다.
점점 디자인적으로도 마케팅적으로도 감을 잡아갈 때 즈음 수습 종료 기간인 3개월이 다가왔다.
3개월이 끝나기 전, 대표는 나를 불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당장 성과를 내야만 살아남는 스타트업이다. 그런데 아직 그렇다 할만한 성과를 3개월 내에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지금 하는 일으로는 우리와 함께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 여기까지 하고 마무리를 하거나, 아니면 팀에 기여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보면 어떻겠냐.
나는 굳이 직무를 바꿔가면서까지 이 회사에 남아있고 싶지는 않았다. 직무를 바꾸면 내 3개월의 시간이 버려지는 것 같았다. 또, 사수가 있는 다른 더 큰 회사에서 이 일을 하며 디벨롭해보고 싶은 생각도 컸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해했습니다. 저는 지금하고 있는 직무로 다른 곳에 지원해볼 생각도 있어서요. 그러면 여기까지 하는 걸로 이야기 마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쳤고, 회사는 바로 나를 대체할 콘텐츠 마케터를 채용했다. 나는 인수인계를 준비하며, 당시 새로 디벨롭하기 시작한 페이스북 광고 소재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뜻밖의 재능
남은 기간 동안, 그리고 새로 들어온 콘텐츠 마케터의 온보딩 기간 동안 나는 주로 페이스북 광고 소재 제작을 담당했다.
당시 우리는 페이스북, 구글 광고에 있어 소재나 소구점을 본격적으로 디벨롭하기 전이었다. 그러다 페이스북 광고 디벨롭에 꽂힌(?) 대표님이 소재 제작과 캠페인 세팅에 부스팅을 걸면서 내 리소스의 대부분은 광고 소재 기획과 제작에 쓰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괜찮은 수업(상품)들을 부스팅 하는 목적으로 이미지 한 장을 제작했다. 나는 나름대로의 아이디어로 광고를 제작했고, 그 광고는 놀랍게도 기존 광고들을 모두 제치고 가장 좋은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같은 포맷으로 다른 수업에도 유사한 광고들을 제작해서 세팅했고, 대부분 좋은 성과를 보이며 전체 광고 효율을 높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cpc 절감을 목표로 했으며, cpc는 2배에서 시작해 5배가량까지 낮아졌다.)
그렇게 광고 소재 제작을 맡기 시작한 게 일주일 정도. 이후 대표님은 다시 나를 불러 이야기했다.
정말 죄송한데
제가 말을 번복해도 될까요?
광고 성과가 잘 나고 있으니, 그쪽으로 일을 맡아서 해보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번복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나만 괜찮으면 더 같이 일해 보면 어떻겠냐고.
나는 쿨하게 오케이 했다. 3개월 만에 그만둔 이력은 좀 멋이 없으니까. 학교를 복학하기 전까지만 더 다닐 생각이었다. 그렇게 광고 기획과 제작을 메인으로 마케팅 퍼포먼스를 올리는 일을 맡았다.
그렇게 광고 기획부터 시작해 광고 집행부터 분석, 광고 세팅 및 구조 변경 등 퍼포먼스 마케팅 전반을 담당했다. 구글과 페이스북을 오가며 컨설팅을 받고 광고 세팅을 바꾸고 소구점을 실험하며 성과를 올려갔다.
그리고 1년이 지나, 학교로 돌아갈 시점이 되었다.
나는 퇴사하고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대표는 일 년만 더 같이하면 안 되겠냐고 했다.
나는 단 몇 개월 만에,
내보내려던 사람에서 붙잡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후에 술자리에서 대표는 나와 다른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쏘이는 제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성장이 빠른 사람 같아요. 진심으로 리스펙 합니다.
이후에도 같이 일하던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몇 번 더 들었다.
나는 이 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냥 잘한다는 이야기 보다 몇 배는 더 기분 좋았다.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포하는 의미 같아 뿌듯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나를 내보내려는 의사결정을 했던 사람에게 본때(?)를 보여준 것 같아 조금 통쾌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나는 이 회사에서 꾸준히 능력을 인정받으며 2년이 조금 덜 되는 시간 동안 즐겁게 일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때 나의 능력을 인정해준 동료의 회사에서 더 성장한 모습으로 함께 일하고 있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 시절 24살의 나도, 나를 내보내려는 결정을 했던 대표도 성장 중에 있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빠르게 성장하는 능력이다.
지금 조금 부족하다고 해서 낙담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학습하는 동물이다.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어렵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면 된다. 그리고 증명해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