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기회로 바꾸는 법
나는 대학시절 꽤나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그중 두 번은 자발적으로 그만둔 게 아닌, 일방적으로 잘렸다.
그러나 나는 해고를 당할 때마다 더 나은 선택을 했고, 그 선택들은 눈 덩이처럼 커져 나에게 좋은 기회를 선사했다.
그리고 그 끝에
N잡러이자 한 팀의 리더인 지금의 내가 있다.
첫 아르바이트
내 첫 번째 아르바이트는 미술학원 강사였다.
미술대학을 준비하기 위해 다녔던 학원에서는, 내가 대학을 붙자마자 강사 제안을 했고 그렇게 나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강사라는 좋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반수를 하여 다른 지역의 대학에 가게 되며 먼 거리를 왕복하며 강사일을 하기가 어려워졌고, 나는 대학교 1학년을 새로이 맞이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첫 번째 해고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였다.
언젠가는 한 번쯤 해보고 싶었기도 했고, 으레 티비에 나오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처럼 영어 단어를 공부하며 알바를 하면 효율적이면서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학교 근처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친구들에게 폐기 음식을 나눠주는 소소한 즐거움을 꿈꿨다.
그런데 웬걸, 점장님은 편의점 운영에 투철한 서비스 정신을 가진 분이셨다.
손님이 없을 때도, 절대 앉아 있을 수 없었고, 영어단어를 외우거나 스마트폰을 하는 행위는 고객이 좋은 서비스를 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일절 금지했다. 친구들을 데려오는 행위는 안되고, 폐기 음식은 하루에 정해진 개수만큼만 가져갈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일자리는 아니었지만, 나는 요령껏 잘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절하기엔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은 일이었으며 위치가 너무나 완벽했다. (학교 바로 뒤였으며, 기숙사에서 1분 거리였다.) 그래서 잘해보기로 마음먹었고 그날로 일을 시작했다.
제가 CCTV를 봤는데요.
오늘까지만 나와주시면 될 것 같아요.
나는 일 한지 딱 한 달째에 잘렸다.
포스기가 고장 난 사건이 있어 점장님이 CCTV를 돌려보던 중, 내가 편의점에 온 친구들이 있는 테이블에 가서 잠시 이야기하는 것을 발견했다. 점장님의 운영 철학에 맞지 않는 나는, 그다음 날 바로 해고당했다.
두 번째 해고
편의점에서 잘리고 학교 앞을 걷던 나는,
과 선배에게 전화를 받았다.
너 근로 학생 할래?
자기가 일하던 부서에서 근로학생을 뽑는데 할 생각이 있냐는 전화였다. 근로학생은 꽤 괜찮은 시급을 받으면서 공강 시간에 틈틈이 사무보조를 할 수 있는 일이어서 학교 학생들에게 선망의 아르바이트였다. 다만 정말 소수의 인원만 뽑고, 대부분 추천으로 채용해 인맥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이게 웬 떡이냐 하며, 마침 오늘 편의점 알바를 잘렸으니 바로 하겠다고 했다.
근 일 년이 다되어가는 꽤 긴 기간 동안 나는 교수님들이 회의하는 사무실에서 근로학생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은 너무 쉬웠다. 아침에 오는 날은 청소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앉아서 과제를 하면 됐다. 근근이 옆 자리 선생님이 시키는 프린트 심부름이나 타 부서에 서류를 가져다주는 심부름을 하면 되었다. 원하던, 정말 효율적으로 시간을 쓸 수 있는 일이었다.
꽤 오래 일을 하며 함께 일하는 선생님, 그리고 자주 들르시는 대학원생 오빠와 친해졌고 간간히 업무 교대를 하는, 이 부서에서만 3년을 일했다는 4학년 언니와도 어느 정도 얼굴을 트며 어렵지 않은 생활을 보냈다. 일하며 칭찬도 많이 받았고 같이 일하는 선생님과 언니오빠들도 나를 잘 챙겨주었다.
그러던 중, 방학을 맞아 업무가 늘어난 우리 부서에 새 학생이 채용되었다. 여자 밖에 없었던 우리 부서는 힘쓸 사람이 필요하다며 남학생을 채용했다.
사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방학에 일이 늘어 인원을 채용한 거면, 방학이 끝나면 자르겠다는 건가?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언젠가는 세 명 중 한 명이 잘리겠거니, 그게 내가 될 확률이 높겠거니 예측했으나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혜린 학생,
그동안 수고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방학이 끝나자 나는 해고당했다.
근로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최저 임금이 올라 인원을 감축하라는 지시가 내려와서 혜린 학생은 어제까지 일을 하는 것으로 해야 할 것 같다는 전화였다. 선생님은 고생했고 아쉽다고 했다.
며칠 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내려가던 엘리베이터에서 일할 때 자주 보던 대학원생 오빠를 만났다.
나에게 왜 안 나오냐고, 그만뒀냐고 물었다. 나는 그만둔 게 아니라 잘렸다고 했다. 그분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일 제일 잘하는데 왜 너를 잘랐지?
또 다른 기회의 시작
두 번의 아르바이트에서 잘리고 이후 나는 같은 과 동기의 제안에 따라 영어과외를 시작했다.
이 길로 나는 영어부터 국어, 미술 등 내가 할 수 있는 과외들을 했고, 그 당시 쓰는 과외 앱에서 TOP 100위 안에 들며 손쉽게 과외를 구하여 이전에 비해 더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런데 당시 대학교 3학년이 된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소비되는 시간이 아깝기 시작했다.
영어 과외를 하기 위해서는 따로 영어 공부를 해야 했기에. 나는 더 공부를 하지 않고 내 전공이나 재능으로 할 수 있는 과외를 찾기 시작했다.
디자인을 전공한 나는 성인을 대상으로 포토샵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수업이 잘되면서 1:1로 시작한 과외는 8:1의 강의로까지 확장되었다.
강의가 잘되기 시작하자, 강의를 하던 플랫폼에서 채용 제안이 왔다. 포토샵 강사인 나에게 디자이너이자 마케터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그 길로 나는 디자이너가 되었고,
이후 지속적으로 강의를 병행하며 좋은 기회들을 많이 제안받았다.
포토샵 및 일러스트 책을 집필해 25살이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으며, 야나두, 유데미 등의 플랫폼에서 온라인 강의를 찍었고, 어도비와 대학에서는 강의제안이 왔다.
이렇게 나는 편의점 알바로 시작해 또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아마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편의점에서 잘리지 않았다면 나는 대학교 4학년때까지 편의점에서 일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근로학생 아르바이트에서 해고되지 않았으면 나는 과외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편의점 - 근로학생 - 과외 - 강사로 이어진 내 대학 시절의 아르바이트 경험은 나에게 실패를 혹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법에 대해 알게 해 줬다.
사실 그렇다.
똥차가 가고 벤츠가 온다고 하지 않나.
비단 연애에서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직업이나 일, 혹은 다른 모든 경험도 그다음의 내가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혹시 지금 실패했다면, 아니 실패한 경험이 있다면 굳이 좌절할 필요는 없다.
분명 앞으로는 더 좋은 기회들이 찾아올 테고
더 좋은 경험들을 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