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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밧드 Nov 03. 2022

산촌의 가을과 담금주

내가 사는 곳은 해발 900미터다. 11월이면 벌써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쌀쌀하다. 더위를 참지 못하는 체질 때문에 높은 지대를 선택했으니 추위는 견뎌야 한다.


가시오갈피나무, 돌배나무, 꽃사과나무는 본래부터 있었고, 몇 년 전에 블루베리나무, 왕보리수나무, 마가목을 심어 이젠 열매가 제법 열린다. 이들의 공통점은 담금주의 원료라는 것이다.


돌배와 꽃사과는 사이좋게 번갈아가며 풍작과 흉작을 반복한다. 올해는 돌배가 풍작이고 꽃사과가 흉작이다. 5리터들이 술병 3개를 담고도 많이 남아 생으로 한 달 넘게 먹었다. 게으른 데다 바쁜 탓에 꽃사과는 아직도 수확을 다 하지 못했다. 꽃사과는 담금주 속에서 1년을 경과해도 단단하여 그대로 따라 마셔도 된다. 하지만 돌배주는 석 달 정도면 물러 터지기 때문에, 그전에 걸러서 술만 따로 숙성시켜야 한다.


가시오가피나무 열매로 담근 술은 옛부터 신비의 약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술을 장복하여 300살까지 산 사람이 있다는 다소 허황된 이야기가 있는데, 아무튼 좋다는 것일 테니 무슨 문제랴. 오가피주는 검은색이 짙어 진짜 약주처럼 보이고, 맛도 진하여 몸에 좋을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블루베리주와 왕보리수주는 별 특색이 없고, 마가목주는 담근 적이 없어 어떤지 모른다. 올해는 독활주를 담가보려는데, 그것은 땅두릅이라고도 한다. 밭 가장자리에 서너 뿌리를 심었는데, 몇 년 만에 울타리처럼 보일 정도로 퍼졌다. 그 열매들이 올해에 비로소 내 눈에 띄었다. 송이마다 촘촘이 열린 조그마한 알갱이가 처음에는 파랗더니 지금은 새까맣다.

 

내게 있어 산촌의 가을은, 특히 늦가을은 담금주의 계절이다. 각종 열매를 종류별로 술병에 1/3쯤 채우고 30도 내지 35도의 소주를 붓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토굴에 보관하면 술 담그기가 완료된다. 물론 무른 열매는 석 달 정도에 걸러 술만 병에 담아 숙성시킨다. 무더운 여름에도 시원하고 혹한의 겨울에도 훈훈한 토굴은 담금주를 숙성시키기에 알맞다.


산촌에는 늘상 할 일이 많다. 잠에서 깨면 할 일들이 먼저 떠오른다. 처음에는 바삐 움직였지만, 이젠 선택과 집중 전략을 쓴다. 담금주는 그 전략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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