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밧드 Mar 05. 2023

단순한 열정 Passion simple

사랑의 규칙에 빠진 여자

먼저 글 '그녀가 처음 울던 날'에서 그녀가 떠난 이유는 사랑의 규칙이 억울해서라고 했다. 여자는 기다리고 남자는 기다리게 한다. 여자는 바쁠 때도 남자를 생각하지만, 남자는 바쁘지 않을 때만 여자를 생각한다. 여자는 사랑하고, 남자는 사랑을 받는다. 이것이 사랑의 규칙이다. 


그러나 '사랑의 규칙이란 것이 정말 그럴까' 하며 나는 의문을 제기했다. 즉 내가 경험한 바로는 직접 경험이든 간접 경험이든 사랑의 게임에서 여자가 불리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 것이다. 여기서 간접경험이란 소설을 말한다. 


그런데 얼마 전 김광석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소설, <단순한 열정>을 읽었기에 간략히 소개한다. 프랑스 여성 작가 '아니 에르노'가 1991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그것이 번역되어 1993년에 우리나라에서 출간됐는데, 내가 읽은 것은 2001년 번역판이다. 책 뒷부분에 문학평론가의 해설과 옮긴이의 말과 작가의 연보가 실려 있다. 작가는 2022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내용은 돌싱인 여자가 연하인 유부남을 지독하게 사랑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사랑이 '사랑의 규칙'에 딱 들어맞는다. 몇몇 사례들을 보자.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관심을 갖는 유일한 화제는 그 사람의 직업이나 나라, 혹은 그 사람이 가봤던 장소 등, 그 사람과 관련 있는 것들뿐이었다. 

 

나는 가끔 백지 위에 날짜, 시간, 그리고 "그가 올 거야"라는 문장을 적고 그 사람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그 사람의 사랑이 식었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마음을 끄적였다. 


그 사람의 전화만 기다리며 고통을 겪는 일이 너무 끔찍해서 그와 헤어지길 원했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내 기억으로는 남자에 대한 여자의 사랑이 이처럼 집요하게 표현된 문장들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여자에 대한 남자의 사랑이 과도하게 표현된 문장들은 많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여성 소설가에 비해 남성 소설가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 이유가 될 것이다. 


문학평론가 이재룡(숭실대 불문과 교수)의 해설을 들어 보자. passion을 열정이라고 번역하지만, 그것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겪은 '고통'을 지칭하기도 한다. 사르트르는 우리의 삶은 '무익한 수난'이라고 했다. 작가는 형용사만 바꿔 자신의 체험을 '단순한 수난'으로 명명했으리라. 


내가 읽기엔 수난보다는 열정이라고 번역하는 게 더 적확한 것 같다. 이 작품 후 작가가 발표한 <탐닉>과 <집착>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나는 그중 <탐닉>만 읽었는데, 내용은 <단순한 열정>의 소재인 작가의 일기다. 그래서 <단순한 열정>보다 책이 더 두껍다. 


사랑의 규칙이란 게 정말 있는 걸까?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 중 어느 쪽이 유리할까? 김광석은 '그녀가 처음 울던 날'에서 남자가 유리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여자는 너무 억울해서 통곡을 하며 떠나갔다는 거다. 


난 그게 아니라고 펄쩍 뛰었는데, 그게 맞다고 한 것이 <단순한 열정>이다. 


이 책은 글쓰기의 전범으로 삼을 만한 것이 있다.  <단순한 열정>의 작가와 대담한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  <칼 같은 글쓰기>인데, 그와 같은  글쓰기 방식을 <단순한 열정>이 보여준다. 그녀는  보여주되 설명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어 온 주제들을 “칼로 도려내고 파헤치고 해부하듯이” 글로 쓴다. 간결하고, 차가운 문장들. 도대체 은유라는 게 없다. 정확한 단어들만이 있을 뿐이다. 


글쓰기 선생은 초보자에게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라고 가르친다. 이는 아니 에르노가 '보여주되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말하기는 즉 설명하는 것이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의 시대에 괴테나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쓸 수는 없다. 읽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단순한 열정>의 작가 아니 에르노가 <칼 같은 글쓰기>로 대안을 제시한다. 


사실만 보여주고, 설명하지 말고, 은유는 아예 사용하지 말고, 사회의 제약을 무시하고,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충실하되 차갑고도 정확한 단어로 표현하란 거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프로 작가들에게도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 방식은 참고할 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