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본래 이름은 사울. 최고의 랍비인 가말리엘에게서 배운 후 성전 당국에서 일했다. 그러던 그에게 예수 추종자들을 색출하여 체포하는 임무가 떨어진다. 임무 수행을 위해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부활한 예수를 만났는데, 그거로 인생이 완전히 뒤집힌다. 이름도 바울이라고 바꿨다.
예수에 꽂힌 바울은 편지를 마구 써댔는데, 그것이 기독교의 뼈대가 되었다. 한 마디로 기독교의 창시자가 된 거다. 하! 예수가 아니라, 바울이 기독교의 창시자라니! 그만큼 그는 종교적 천재였고, 오늘날의 유대인 학자들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단다.
그런데 바울은 지옥에 대하여는 입도 뻥끗 안 했고, 사후세계에 대하여도 이렇다 저렇다 안 했다. 구원에 하느님의 폭력이 필요하다는 말도 안 했다. 기껏 한 말이 죄인은 주님 앞에서 쫓겨나 영원히 멸망한다는 정도다. 죄인은 영원히 죽는다는 것.
그러나 예수 숭배자로서는 어울리지 않게 바울은 약간 정신 나간 소리를 했다.
'누구든지 정부 당국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력이 다 하느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3장)
통치자는 하느님이 세운 거라, 그를 거역하면 심판 받는다. 그는 하느님의 일꾼으로, 칼을 갖고 악인들에게 하느님의 형벌을 내린다. 그러므로 통치자에게 복종하고, 세금도 잘 바쳐야 한다. 이 말은 봉건제도, 절대왕정, 제국주의, 독재정권에게 정당성을 부여해 줬다. 정당성 부여는 기독교지도자들의 전매특허다.
마르틴 루터,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95개 조 논제'로 맞서 싸운 종교개혁가다.
그런 루터가 농민반란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지상의 왕국은 불평등 없인 존재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지주고 나머지는 농노여야 하며, 어떤 사람은 왕이고 나머지는 신하가 되어야 한다.' 그는 이런 기조로 논문까지 썼단다.
반면에 루터는 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반도들은 악마의 화신이다. 미친개를 때려잡듯 농민 반도들을 죽여라. 만약 당신들이 그들을 공격하지 않으면, 그들이 당신들의 토지를 모두 뺏어갈 것이다.'
하! 기독교 역사에서 마르틴 루터 한 사람만 그랬을까? 오늘날의 기독교지도자들이나 신자들을 보라. 대다수가 부자들 편에 서고, 민중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독재정권을 옹호한다. 국가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위해서는 유혈사태도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하! 예수는 '부자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통과하는 것이 더 쉽다'라고 했다.
바울은 또 여성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자들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니, 조용히 하십시오. 율법에도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만일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어보십시오.' (고린도전서 14장)
디모데전서 2장에서는 더 심한 말을 했다.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만 여자는 조용히 해야 한다. 아담이 먼저 창조된 다음에 이브가 창조되었고,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서 인류가 죄에 빠진 것이다.'
권력자들이 간통한 여인을 데려오자, 예수는 그 여자를 구원해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간통한 남자는 데려오지 않았다. 간통을 혼자 하나? 운동장이 너무 기울어 현기증이 날 정도다. 또한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여자를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한 것이다. 바울은 예수를 잘 몰랐던 것 같다.
구약성경에서의 여성 지위와 바울의 여성관이 서로 화학작용을 일으켰다. 그 결과 기독교 국가에서 오랫동안 여성이 정치에서 배제되었다. 여성은 20세기에 와서야 남성과 동등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은 오랜 기간 사제가 될 수 없었다. 기독교지도자들이 예수의 여성관보다 바울의 몇 마디 말을 신뢰한 것이다. 지금까지도 로마 교황청은 여성 사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에 개신교에서는 점차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주는 제도가 확산되고 있다. 하! 개신교니 가톨릭보다 조금이라도 나야죠. 그러나 여성목사는 교회에서 차별과 무시를 당하고 있다.
삼층천에서 예수가 말한다. '바울아, 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