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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바꾸었다

아리피졸에서 다시 인데놀로

두 달만에 병원 예약이 있었다. 의사에게 가서 “요새 너무 화가 많이 나요.”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회사에서 일이 많아서 그러냐고 물었다. 그런 것도 있고…… 일을 하고 있는데 또 일이 쏟아지고, 어떤 일은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직접 말했지만 결국 그 일을 시키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나를 회유하려고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 같고, 그래서 화가 나요. 어떤 일들을 하고 있냐는 질문에 나는 요즘 하고 있는 일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뿐인가. 화가 나는 것뿐만 아니라 불안도 다시 스멀스멀 느껴진다. 예전에 자주 불안하고 사람들 앞에서 떨리던 것이 인데놀을 먹고 좋아졌었는데, 요즘은 다시 조금씩 불안정함이 느껴진다. 인데놀은 갑자기 긴장되며 발작성 빈맥이 올 때 진정시켜주는 약이다. 1~2년 꾸준히 복용하고는 상태가 안정되어 처방전에서 빠졌었다.


오늘 의사는 아리피졸을 빼고 인데놀 반 알을 추가해주었다. 나는 아리피졸 덕에 의욕과 함께 짜증/화가 왔으니 이제 짜증/화와 함께 의욕이 다시 떠나려나, 생각했다.




어젠 호봉이 오르는 것에 대한 공지 메일이 왔다. 올라봤자 작고 귀엽겠지. 메일을 열어 두고, 요즘 화가 날 정도로 내게 쏟아지는 일들과 나의 적디 적은 월급에 대해 생각했다. 이 정도로 일을 시키면서 고작 이 월급? 너무 적음.


그간 월급에 대해 크게 화가 나지 않았던 것은 애초에 월급이 적다는 것을 알고 입사해서이기도 하지만, 내가 초과근무를 하도 많이 해서 늘 초과근무 수당이 맥시멈으로 붙은 월급만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일에 속도가 더 붙기도 했고, 사무실에서 단 1초도 더 숨 쉬고 싶지 않아 주로 미친 듯이 일하고 예전보다 일찍 퇴근하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초과근무 수당이 줄어서 보잘것없는 내 기본급이 새삼스럽게 실체를 드러냈다. 내 월급을 생각하면 이제 음… 불쾌하다.


그러나 더 불쾌하게 두려운 것은, 새삼스럽게 적은 내 월급, 그 마저도 없으면 삶이 통째로 휘청거릴 거라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내 삶에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나의 회사 생활 히스토리를 알고 있는 의사 선생님은 오늘 나의 회사 이야기를 듣다가 계속 환경이 나빠지기만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렇지 않아요? 2020년보다 2021년이 더 나빴고, 2021년보다 2022년이 나빠진 것 같아요.” 맞는 말이었다. 그렇게 연도별로 비교를 하니 더 명확했다. 2020년에 비해 2021년에, 2021년에 비해 2022년에, 계속 일은 추가됐고 나의 노동환경은 나빠지기만 했다.


선생님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면 다시 좋아지길 기다리며 계속 다닐 수 있지만 나빠지기만 하면 그럴 수 없다’며 슬슬 퇴사를 생각해볼 것을 권했다.




문제는 퇴사를 실행할 의욕과 용기, 결단력. 나는 그것이 나한테 있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없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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