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제14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펴낸 곳;(주)문학동네
작가; 정선임
제목: 요카타(다행이다)란 뜻의 일본말'
'다다미 두 장 반짜리 방구석구석 아슴푸레 새벽빛이 스민다.'로 소설은 시작된다. 호적의 착오로 나가 아닌 언니로 살아가는 서연화는 언니 나이로 백 살이다. 한 세기를 살아낸 것이다. 나혜석이 일찍이 해외로 유학을 갔고 남편과의 이혼을 선언했던 가부장제에 당당하게 맞선 여성으로 우린 기억한다면, 주인공 서연화는 문맹이다.
기억 속에서 침목 위를 위태롭게 걸어가던 여자아이, 서러움과 분노로 몸이 기억하고 있는 그 여자아이가 누구였는지를 훗날 서연화는 또렷이 기억으로 가져간다. 아버지가 나이 많은 일본인 주인 방에 들여보내기로 한날이었다.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나고 싶었다. 바다를 건너고 싶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가지 못했다.
파친코의 선자를, 미나리의 순자를, 1920년대의 여인들의 삶이 여기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글자를 가르쳐준 진은 "세상이 달라 보일 거예요."라고 말한다. 다르게 본다는 것은 망원경처럼 멀리 있는 것을 확대해서 보는 것과 비슷한 의미일까.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까지 보게 된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그대로 있고 싶다. 다르게 보고 싶지 않다. 주체적 삶이라기보다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서연화는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소극적이다. 주어진 삶을 치열하게 살아냈지만 역사 앞에 서연화는 지워진 존재이다. 그런 삶을 살아가지만 표면에 드러난 서연화의 삶을 불행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은, 역사 앞에 당당했던 나혜석과 서연화를 나란히 두고 본다면 어떤 삶이 더 치열하고 당당했을까? 이건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서연화는 한 세기를 살면서 미디어의 힘에 조명된다. 일본인 남편이 자주 읽던 시집 속의 '이상하다, 이렇게 살아 있는 것. 석 줄짜리 시를 찾는다. 가운데 부분이 생각나지 않아서 서재를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양동이를 들고 개펄로 나가 꿈틀거리는 낙지와 도망가는 게 들을 지켜본다.
이상했다. 살아서 자꾸만 움직이는 것이. 가장보고 싶은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있어요. 동생이요. 네 살 터울인 여동생이 있었어요."
몸이 기억하는 자신이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서연화는 여기서 주체가 된다. 개펄에서 걸어 나오다 뒤를 돌아보니 푹푹 빠지며 걸어왔던 발자국도, 흉하게 파헤쳐진 자리와 들쑤셔진 자국도 사라져 있었다. 밀물이 밀려와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놓았다. 죽은 것들도, 살아있는 것들도 바다는 휩쓸어갔다. 서연화의 삶이 여기에 있다. 백 살까지 살아내면 더 이상 놀랄 일이 없다는 인생이, 사회적 편견 속에서 가능성의 한계에 서 출발하는 소설은 많은 의문점과 동시에 역사적 편견에 맞서있는 듯하다.
나혜석은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하며 역사 앞에서 사라진다. 서연화는 한세대를 살아가면서 “장수의 비결이 뭔가요.” 로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살아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다.'로 소설은 끝이 난다.
우리들 모두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서연화는 살아있음을 발화의 주체가 되어 온전히 자기 식으로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