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비가 바람을 몰고 와 오래도록 머물던 시린 겨울 이 멍울로 가슴을 적실 때 낯선 서울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시골서 산다는 게 무의미했고 날고 싶었다 나비처럼, 서울에서의 삶은 에스프레소의 쓴맛을 닮아있었다. 민들레처럼 쓴 에스프레소가 목울대를 지나 향기로 삶을 드리울 때 우연히 패션업계에 발을 들였다. 삶을 위해 멋모르고 뛰어다녔다. 20대를 옷과 함께 숨을 쉬며 시리게 보냈다.
살아가다 보면 갈림길에 서서 막막할 때가 종종 생기곤 한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그 순간에 선택은 그 길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후회도 미련도 또 다른 감동도 있겠지만 그 선택이 순간 최선이었을 것이고 후회 미련이 남을지라도 가지 않은 길 역시 또 다른 고민이 있을 것이기에~~ 나에겐 유학 그리고 결혼 그 선택의 순간이 가장 힘들었던 선택이었다.
결혼을 선택하며 시월의 신부 가 되었다. 종갓집 맏며느리의 길을 겁 없이 하이힐을 신고 들어갔다. 소쩍새가 날아올라 하늘에 한 폭의 그림을 수놓을 때 봄이 왔음을 알린다. 아이들이 담벼락을 넘어오는 꽃바람에 들판으로 비탈진 산으로 놀잇감을 찾아 분주히 몸 기지개를 키울 때 어른들은 논에 물을 대랴 밭에 고랑을 파랴 어른 아이할 것 없이 몸과 마음이 종종걸음으로 모내기철이 왔음을 알린다.
함지박에 음식들을 챙겨 담고 시누이들은 머리에 수건을 돌돌 말아 똬리를 만들어 머리에 얹고 함지박을 올린다. 주전자 두 개를 같고 따라오라 한다. 맨 끝에 서서 종종걸음으로 논두렁길을 따라간다. "어이야" 하면 숙였던 허리 들을 다 같이 따라 펴고 "어이야" 하면 다시 똑같이 허리를 숙여 모를 꽂는 모습이 아스라이 멀리 보인다. 먼 길이 아닌데 유난스럽게 멀게 느껴지며 눈이 안개가 낀 거같이 흐릿하다. 눈에 빛이 스치고 지나 잠깐 잠이 들었나 싶은데 누군가 나를 업고 뛰고 있다. 숨을 헐떡거리는 소리가 곧 심장이 멎을 거 같은 숨소리다. 옷을 보니 남편이 나를 업고 집을 향해 뛰고 있다. "내려줘도 돼" 못 들었는지 그대로 뛴다. 집 평상에 나를 눕히고 보리차를 먹인다. 눈을 뜨고 하늘을 본다. 대나무 숲이 소소한 바람을 보낸다.
논두렁에 쓰러진 나를 모내기를 하던 사람이 업고 뛰어 왔으니 둘의 몰골이 가히 상상이 간다. 어이없어 마주 보며 웃는다.
첫 번째 모내기는 허망하고 민망스럽게 기억 속으로 소멸되어 옅어졌다.
IMF, 온 나라가 한순간에 침몰되어 버린 사건 은행들이 무너지고 대기업들이 문을 닫았다. 사회적 파장은 기반이 취약한 패션계를 강타했다. 파리까지 진출했던 본사가 부도를 맞았다. 그때 웬만한 연립을 살 수 있는 보증금과 동안 쌓인 커리어가 무너졌다.
아버님이 쓰러지셨다. 맥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어서 털고 일어나 아버님을 모시고 병원을 찾았다. 위암 4기 치료할 수 있는 시간을 놓친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었다. 이렇게 11개월을 사시다 영면하셨다.
시골을 내려가면 안채보다 사랑채에 머물길 좋아했다. 섬돌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하얀 고무신과 검정 고무신이 정겨웠고 할머님 어머님의 손길이 머물렀던 툇마루의 군데군데 조금씩 금이 가고 낡아진 나뭇결이 매끄럽고 좋았다. 누르스름한 창호지가 발라져 있던 여닫이문의 쇠문고리를 잡을 땐 겨울엔 손이 쇠문고리에 붙을 듯이 아린감각이 여름엔 서늘함이 가슴까지 시원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황톳빛 장판이 반질반질했고 아랫목은 오랜 세월 구들장이 방안을 온기로 덮였음을 알 수 있게 거무스름 탄 자국으로 나를 반겼다. 국화꽃이 넣어진 창호지의 들창을 열면 빽빽한 대나무 숲이 쏟아져 들어온다.
새벽녘 군불을 지피시는 아버님의 헛기침 소리에 눈을 뜨면 들창에 비추이는 그림자가 새들이 앉아있는 형상으로 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간간히 비추이는 햇빛 속에 새들이 푸드덕거리듯 날아올랐다. 그 따뜻한 아랫목 이불속이 그립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님 홀로 이 집을 오랜 시간 지키고 계신다. 손을 볼 수 없어 사랑채는 을씨년스럽게 아버님과 함께 점점 추억 속으로 슬프지만 옅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