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롯 Apr 02. 2024

뜻밖의 일상

아이들은 봄 방학이다. 나는 월요일만 휴가가 가능했기에 나머지 날들은 아빠하고 지내야 할 거 같아 몇 주 전부터 남편에게 계획이 있느냐고 물어보던 나에게 묵묵부답이더니 지난주에야 애들을 데리고 짧은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여행지가 근처여서 월욜일이라도 같이 있다 돌아와서 화요일에 출근할까 고민했었는데 일요일이 되자 그냥 집에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몰려오는 바람에 남편에게 그냥 나는 집에 있을 테니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오라고 말했다. 미안한 마음이 섞여 괜히 더 퉁명스럽게. 어차피 원래 혼자 데리고 갈 생각이었던 남편은 별로 상관 안 하는 거 같았지만. 아이들에게 나도 갈지도 모른다고 미리 말 안 꺼냈길 다행이다 싶었지.


미안하지 말라고였을까. 나에게 정당한 구실을 주려는 듯 전 날 밤부터 목이 붓는 거 같더니 아침이 되자 콧물도 나오면서 감기 기운이 있었다. 어차피 못 가게 됐네. 남편이 갈 채비를 마저 하는 동안 단이와 은이는 이불속에 누워있는 나를 번갈아 가며 방문했다. 단이는 아무 말 없이 들어와 내 위에 포개 누우며 허그를 했고, 은이는 엄마가 아파서 슬프다며, 같이 못 가서 속상하다며 재잘거렸다. 그러더니 마지막 방문했을 땐 며칠 전에 받은 선물에서 나온 미니어처 제시를 내 손바닥에 건네주며 자기가 보고 싶을 때마다 보라고 했다. 그래봤자 온전히 떨어져 있는 시간은 내일 하루뿐인걸 하며 웃음이 나면서도 아이들의 애틋함이 싫지 않다. 언제까지 계속될 애틋함인지 몰라서이겠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현관에 서서 손을 흔들어 준 뒤 문을 닫고 들어오니 생각지도 못했던 자유가 오늘 반나절, 내일 퇴근 후 반나절, 하루 남짓만큼 주워졌다. 원래 남편이 여행 계획을 말했을 땐, 자유 시간이 생길 거라는 기대가 몽글몽글 올라왔을 땐 이것저것 아이들과는 잘 못 먹게 되는 음식들이 떠올리며 그중에 뭘 골라 먹을까 고민했었지만, 막상 혼자되니 다 귀찮아 라면을 끓여 밥까지 야무지게 말아먹었다. 다시 침대로 들어가려다 맘을 고쳐먹고 옷을 단단히 차려입고 배낭에 돌려줄 책들을 담아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에 갔다. 자전거는 타기까진 정말 귀찮은데 막상 타기 시작하면 그동안 타지 않았던 모든 순간들이 후회될 정도로 좋다. 책을 돌려주고, 한 권을 빠트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집에 들렀다 다시 도서관에 들려 마저 돌려주고도 동네를 몇 바퀴 더 돌 정도로. "Ha! Today's April fools' day. I got you!" "No, I got you!" "I got you first!" 지나가면서 듣게 된 누가 이겼어도 상관없을 엄마와 아이의 웃음 가득했던 대화도. 아무리 숨죽여 페달을 밟아도 귀신같이 알아채고 하던 일을 관두고 후다닥 달음질치던 다람쥐들을 보며 '나는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라는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나의 엉뚱함도. 딱 적당히 좋았던 하루.



매거진의 이전글 외할머니의 이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