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정말 간혹 나오는 잔기침 이외엔 몸이 너무 멀쩡해져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역시나 아직은 양성이라고 나왔다. 콜센터에서 일하면서 수백 번도 넘게 코비드에 걸린 후 90일까진 false positive 결과가 나올 수 있으니 5일 격리 후 대부분의 증상이 사라지면 격리 해제하고 출근할 수 있다고 대답해놓고선 막상 그 대답을 나에게 적용하려니, 정말 내일부턴 가족들을 마주해도 될까 의문이다. 역시 내가 당해보는 것만큼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기 좋은 방법은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난 후에야 잘 모르는 채 너무 쉽게 말했던 내 모습이 후회된다.
환자들을 치료할 때도, 어떤 식의 통증을 느끼는지 물을 때마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그들이 대답하는 통증이 실질적으로 어떤 느낌인지 체감하지 못했었다. 내가 직접 신경치료를 받게 되기 전까진. 사람들은 종종 묻곤 한다. ‘어머, 치과 의사도 충치가 있어요?’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질문이 아님에도 초반엔 그런 질문을 들을 때면 왠지 모르는 죄책감에 휩싸였는데 지금은 그냥 웃어넘긴다. 그럼요. 저도 23살이 될 때까진 제가 치과의사가 될지 몰랐는 걸요. 저도 부모님께 용돈 받자마자 아파트 앞 구멍가게로 달려가 츄파춥스를 입에 물던, 이는 닦고 자는 거냐며 매 번 잔소리를 듣던 아이였는 걸요. 그렇게 어린 시절 얻었던 충치 덕에 치료했던 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경이 죽었고 결국 신경치료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난 그제야 아, sharp pain은 이런 거구나, lingering pain은 이런 느낌이구나 하며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던 고통을 실체화할 수 있었다. 그제야 환자들의 고통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이 일기를 시작한 건, 글쓰기를 늦추고 싶지 않아서였다. 지금까지 올린 글들의 대부분은 여러 번 곱씹어 보고 올린 글들이었다. 곱씹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게 뭐라고’라는 마음이 같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럴수로 다음 글을 쓰기까진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조금 더 편안해지고 싶었고, 습관을 들이고 싶었다. 짧은 호흡의 글들도 뱉어내고 싶었다. 마침 긴 휴가가 시작되었고 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5일째 되는 지금은 여태까지 쓴 글들이 약간 낯설다. 나인 거 같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가 쓴 거 같기도 하다. 너무 성의 없이 쌀을 씻다 쌀들을 물과 함께 쏟아낸 느낌이기도 하고, 너무 구멍이 큰 체망으로 걸러낼 것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 느낌이기도 하다. 결국 난 조금 후회하면서도 중간에 그만두는 걸 잘 못 참는 성격 때문에 계속하게 될까. 언젠가 아는 동생이 그랬는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겠다고. 죽이 되더라도 일단 먹을 수는 있으니. 그 아이는 현자였던가.
오늘의 사랑은. 열린 창문 새로 들어오는 바람에 살랑살랑 흔드리는 나뭇잎 소리와 방문 너머 들려오는 (웬일인지) 안 싸우고 잘 노는 두 아이의 왁자지껄한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