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ais Ku Mar 05. 2024

구교환을 닮은 일본 남자에게 빠졌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 1 _ 태국 치앙다오 편

축제에서 만난 그 사람은 구교환 배우를 닮았다.

처음 봤을 때는 전혀 몰랐지만 이야기하다 보니 누군가 닮았는데... 했는데 그걸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전형적인 일본인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그는 나보다 어렸지만 훨씬 나이 들어 보였다.








아마도 이런저런 일을 겪어서 일 테고

그는 머지않은 미래에 절에 들어가서 명상하면서 지내는 중이 될 거라고 했다.


처음에는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일본인이라는 걸 알고 자연스레 일본어를 했더니 그도 그냥 거기에 기대겠노라며 일본어로 대화를 나눴다.

물 흐르듯 자연스레 흘러가는 대화가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는 갑작스레 툭하고 던지는 롤플레잉을 좋아해서

뜬금없이 엉뚱한 대사를 치고 들어와서 나의 반응을

기다리고 어김없이 자연스레 맞받아치니 놀라고 감탄하며 서로 내내 농담하면서 놀았다.

그런 쿵작이 자연스레 맞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걸 너무도 즐거워했고 나름 행복해 보였지만 그가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텐데 굳이 물어보지 않았으나 결국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와 마주친 건 음악 축제가 한창인 곳의 메인 장소의 한가운데였다. 그냥 스쳐 지나가도 아무렇지 않을 그런 상태로 그도 나도 누구와 함께가 아닌 각자였고, 눈인사를 나누고 그도 여기에서 일하는 듯하여 나는 누군가를 물어보았고 그는 아마 저기 있을 거라고 주방 쪽을 알려주었다. 그러고 다시 고맙다 해야지 했을 때 그는 이미 없었다.








꽤 넓은 캠프장 같은 곳의 축제에서 그를 다시 만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금세 다시 만났고, 그는 주머니 속에서 작은 브라우니를 꺼내며

해피 발렌타인 하고 작은 목소리로 건네주었다.

그냥 다정도 병이지. 그런 다정한 이였다.

일본어로 하면 優しい人 やさしいひと( yasasi hito )









15밧이라고 적혀 있는 초코 브라우니.

멀뚱히 보는데 기분이 몽글몽글 좋아졌다. 자신이 먹으려고 산 것을 처음 본 사람에게 나눠준 것이다.


2월 14일을 챙기면서 지내던 젊은 시기도 있었지만

어느 해 인가부터 그냥 지나가는 날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만이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라고 하고 대부분의 나라는 같이 선물하면서 데이트를 즐기거나

남자가 표현하는 날이다.


저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 메시지가 와서 예의상의 멘트로 해피 발렌타인 Happy Valentine 이 아니라 옆에 있는 그에게 나도 진심을 담아 해피 발렌타인! 이라고 하고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하고서 아주 작은

브라우니를 나눠 먹었다. 이 순간이 없었더라면 그와의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았을 거다.







그는 여기 음악축제에 와서 주방에서 일하는 자원봉사를 하는 동안 내내


 매일 사랑을 하고 매일 실연당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의 그런 에너지가 놀라웠고, 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그는 어느새 나에게 작업 아닌 작업을 내내 하고 있다. 하지만 구교환을 닮은 이가 작업을 하는 모습은 참으로 귀여웠다. 그의 속마음을 뒤집어 본 건 아니지만 그에게 누구는 그다지 의미가 없는 듯이 여겨졌다. 그냥 옆에 있는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물론 나 역시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이제까지 늘 남성미를 장착한 마초 같은 이만 만나 왔던 나에게 있어서 그는 신선함으로 다가왔고. 내내 뭔가 내장소 같지 않던 축제가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장소처럼 여겨진 것도 그의 덕분이었다.

함께 간단하게 뭔가 먹고 맥주를 마시고 끝도 없는

이야기를 내내 하고. 여기저기 걷고 기대하던 뮤지션의

공연을 함께 보고 이제야 내가 축제 한복판에 있구나! 하고 느끼던 순간.


그가 중이 된다거나 일본에 와이프가 있거나 일본에 그를 따르는 여자친구가 있거나 한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 결혼했지만 와이프가 이혼해주지 않아서 헤어져 있는 상태로 별거 중이라고 했고, 나중에 하루 이틀 지나서 내가 그에게 누군가 좋아하는 이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나를 따르는 여자가 일본에 있다고 했다.  

_ 그 표현이 참 우습게 들렸다. 따르니까 곁을 두고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건가? 결론은 여자친구가 있는 주제에 나에게 계속 작업을 건 그냥


바람피우는 게 일상인 남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왜 내가 만나지는 남자는 늘 이런 상태인 것인 건가? 하는 것이다.

( 물론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제대로 된 남자를 고르지 못하거나.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사람만 고르는 몹쓸 병에 걸린 거처럼 잘못된 남자를 잘도 고른다. 굳이 변명하면 딱히 고른 게 아니다. 그저 만나졌을 뿐.)


이 나이 되도록 꽤 많은 사람을 만났다고 자부하지만 진정 남자 보는 눈이 없어서인지 아님 그냥 조금 나쁜

남자들에게 계속 끌려온 건지 몰라도 숱한 시간을 그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그것을 치유하느라 인생의 일부를 아니 꽤 긴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간이 다시 온다고 해도 아마 나는 또 그들을 선택할지도 모르겠다는 거다.

그냥 끌리는 것을 그저 넘기기에는 내가 마음이 너무 여리거나 쉬이 거부하지 못하는 그들의 매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변명은 여기까지로 하고 그와의 이야기로 다시 넘어가자.


처음 만난 날부터 그는 같이 지내기를 원했지만 캠프장에서 지내야 하는 그러기에는 제약이 있었고, 추위에 떨더라도 좁은 텐트에서 그와 함께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심카드 없이 여행을 하는 나에게 그는 꼭 헤어지기 전에 어디에서 언제 만나자고 이야기해 주었다. 시키지

않아도 그런 걸 알아서 하는 남자가 좋더라.


그는 어쨌든 자원봉사자로 이곳에서 지내기에 일하는 시간이 일정 시간 이상 필요했고 딱 그만큼 떨어져서 각자 시간을 보내기에 좋았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내 손을 이끌고 오토바이 타고 시내로 나가자고 했다. 나 역시 이곳에 하루 이틀 있었더니 뭔가 나가고 싶어서 그의 의견에 찬성했고, 오토바이를  다정하게 타고 나가니 기분이 아주 좋았다. 어느 청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순간에 음악이 울려 퍼지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 누구도 부럽지 않고 아니 그 누구도 떠오르지 않고

그냥 그 순간이 뮤직 비디오처럼 여겨졌고 청춘물의

주인공이 된 거 마냥 순간을 만끽했다. 누군가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간 적이 많지만 그 기분이 분명 다른 지점이 있었다. 손을 끌고 그냥 나가자고 하던 그 순간에 거부할 수 없는 그만의 매력이 분명히 존재했다.

거기엔 노라고 할 수 없고 할 필요도 없는 어떤


강렬한 끌림이 존재했다.








작은 도시에서 괜찮은 카페를 찾기는 어려웠지만 우리는 카페를 찾아가서 둘만의 시간을 공유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의 아픔을 알 수 있었고, 마침내 이곳에 와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기쁘기도 한 한편

안쓰럽기도 하고 내내 그가 어디까지 속내를 털어놓는 건지도 궁금했다.





한 달  인가 걸려서 그렸다는 작품

옆의 남자가 아주 마음에 들어 하며 샀다.

_ 큐레이터나 매니저라도 된 양 돈은 받는 게 좋다고

부추긴 건 나였다.





그림에도 재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섯 작품의 드로잉 액자를 가져왔고 다 팔았다.


그중 두 작품은 그냥 주었다고 했다. 나에게도 준다고 했지만 짐이 많다고 결국 거절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를 기억할 만한 기념품으로 하나 받아올 걸 그랬나 하는 약간의 후회가 들지만 받지 않는 게 맞았다.


그리고 나와 있을 때 두 개의 작품이 팔렸는데 그중 아일랜드인과 내가 대화를 길게 나누자 그는 질투 아닌 질투를 했고, 거기에 대한 대화까지 했지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통나무집 같은 방갈로에서 하루 지내기로 해서 드디어 축제의 현장을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캠프장만큼이나 방갈로는 추웠고 우리는 내내 붙어있는 채로 함께 하고 또 엄한 상황극을 계속했다.


예를 들면 야외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그는 집에 들어온 남편 역할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 : 다다이마! (다녀왔어) 오늘 저녁은 뭐야?

나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더 피곤해 보이네. 고생 많았어요. 저녁 먼저 먹을 래요? 목욕 먼저 할래요?


드라마에서 본 듯한 대사를 내가 그대로 하게 될 줄 몰랐지만. 일본 드라마 열심히 본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해야 하나? 자연스레 나오는 대사에 나도 놀라고 그는 연신 감탄을 하고 그렇게 몇 번의 대화를 더 나누고 배가 고파진 우리는 근처 작은 식당으로 가서 바베큐를 사 오고 맥주와 함께 나눠 먹고 그렇게 밤을 보냈다.

그런 롤플레잉 농담은 밤새 계속되었다.






그리고 하루 정도 더 만났을까?

그는 나에게서 사라진다. 아니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의 여자친구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내 명상이나 하면서 절에 가서 중이 될 거라던 어처구니없는 말도 웃겼지만 그는 와이프가 있으면서 거기다 여자친구도 있단다. 결혼 생활 중에도 어느 순간부터 내내 바람을 폈다는 그. 몇 번은 와이프에게 들키고.


그냥 누군가에게 사랑을 확인받아야 하는 애정결핍인지 애정과잉인지 아님 그저 내내 발정상태인지 모르겠으나 그는 그런 사람인 것이었다. 더 길게 갈 수 없는 축제의 해프닝이라 하기엔 이미 그에게로 향하는 마음이 커져 있었다.

그와 뭘 하겠다는 건 아니고 그의 재능이나 여러 가지가 그냥 중이 되기엔 넘친다고 해야 하나?

meditation이나 그런 것보다는 속세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인간 부류 중 하나였다. 내가 느끼기에 그는 그저 도망치고 싶은데 그 변명이 명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몇 번이고 설득할 필요가 없는 설득을 해보기도 했다. 뭔가 남자로 보다는

구교환 배우를 닮아서 인지 배우를 해도 좋을 거 같아

내가 떠올린 시나리오를 이야기해 주며 영화를 만들자고도 했다. 흔쾌히 서로 그러자. 나는 갤러리 마케팅도 했었어. 매니저가 필요한 거 아니야? 하면서 엄한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정말 그는 그런 누군가가 필요한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레 흐르던 대화며 쿵 하면 짝 하던 케미스트리며 적당한 사이즈의 키 조화하며 _(늘 나보다 큰 남자들만 만나서)

같은 아시아 인이라는 점에서 오는 공통점이랄까?

일본어를 구사하는 데에도 어떤 결이 있는데 그와의 대화는 재미났다.



그래서 마음이 아주 조금 상해버렸다.



정리하기로 하고도 그 넓은 캠프장의 축제 현장에서 몇 번이나 더 마주쳤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또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어서 그냥 스쳐 지나갔다.



축제가 끝나고 나중에 그곳의 사람들을 다른 곳에서 볼일이 있었지만 그만은 거기에 없었다.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누군가에게 물어볼까도 했지만 굳이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다시 보면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몰라도 그가 수년 뒤 중이 된 모습은 쉬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물론 그림을 그리고 명상을 하고 그저 여자에 대한

부분만 정리되면 그는 중이 될 수 있을까?

그가 바라는 그저 명상에로의 길이 그에게 통할까?


진심으로 궁금하지만 그를 떠올리는 것도 이 글이 마지막이다 싶어 기록해 두기로 한다.


안녕! 나의 2024년 발렌타인 보이!

발렌타인 초코 브라우니는 난생처음이었고,

그때 당신의 마음은 진심이었다고 믿으니까.


그저 타협하지 말고 당신의 길을 가기를 바라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